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노력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사랑과 우정 사이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사랑과 우정 사이라 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곧잘 관심과 열정 사이에서 헤매곤 한다.
어렸을 적에는 비슷한 이야기로 취미와 특기 사이라고 하는데
취미와 특기는 보통 '잘하고 못하고 차이'라는 인식이 커서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과는 약간 괴리가 있다.
오늘은 제목과 같이 관심은 있는데 열정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코로나 이후 최근 2~3년간 거리음악이란 것에 빠졌다.
직장인 밴드를 오래도록 해오다가 문득 더 나이가 먹기 전에 거리음악이란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이다 보니 나도 두렵고 아는 것이 없었기에 우선은 주변에 같이할 사람을 찾았다.
그 우선순위로 나와 오래도록 알고 지내고 노래도 곧잘 하는 보컬 L군을 섭외하기로 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고 틈틈이 연습도 같이하곤 했지만 결국 어떤 결과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금도 나는 한 번씩 술을 먹으면 그에게 투정 부리듯 말하곤 했다.
"넌 할 마음은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당연하지. 나도 하고 싶다고"
L이 당연하다는 듯이 답하기에 나는 다시 되묻는다.
"근데 왜 정작 하자고 하면 항상 시간이 안되고, 꼭 내가 하자고 해야 하는 거니.."
L은 잠깐 고개를 긁적 하더니 망설이며 답한다.
"실제로 주말에 시간이 안되기도 하고.. 정말 하고는 싶은데 말이야..."
나는 L의 말이 어떤 것인지 사실 잘 알고 있다. 하루 이틀 알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태도나 말을 힐난하거나 비난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이것이 관심과 열정사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관심은 있는데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때론 있다.
이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인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건 아니다.
사실 L은 캠핑을 좋아하는데, 캠핑에 관해서라면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행동파이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이야기했던 관심이란 것은 거짓인가? 그냥 하는 말인가??
하고 싶다면서 하지 않는 것은 모순된 행동 아닌가?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이런 것은 흔한 것이다.
살은 빼고 싶은데 다이어트 노력은 하기 어려운 현실처럼...
아무튼 주변에 같이할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선뜻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기에
나는 처음부터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역 내 커뮤니티를 만들어 거리음악을 같이 할 사람을 모집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커뮤니티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200여 명이 활동하는 소규모 모임으로 발전하였다.
걔 중에는 기존에 같이 음악 하던 사람들도 있고 새롭게 인연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보니 친구 L과도 곧잘 이런 대화를 하곤 한다.
"어, 이 사람이 그 노래하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그 사람은 기타 치던 사람이고 이 사람이 노래하는 사람이야."
"그래? 그때 OO에서 공연했던 그 사람?"
"아니 그건 다른 사람이고...;;"
대충 이런 이야기들...
하지만 이게 반복되다 보니 어느 날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L에게 물어보았다.
"너 정말 관심 있어서 물어보는 거야? 그냥 이야기하는 거야?"
"당연히 관심 있어서 물어보는 거지.."
"아니 근데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 해줬는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거야?"
"그랬나? 요새 하도 새로운 사람이 많다 보니...."
사실 그가 누가 누구인지 일일이 기억할리가 없었다.
매일매일 소통하고 대화하는 나도 헷갈리는데 어쩌다 한 번씩 보고 듣고 하는 그가 그 많은 사람과 일들을 일일이 기억할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되풀이되는 질의응답에 나는 그를 다그쳤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관심이 아예 없었으면 모르는데 관심은 있으니까...
'밥 먹었니?'라는 일상적인 안부 인사처럼 상대방의 관심사에 관심을 표하는 것일 뿐일 테지...
그러다가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한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아들에게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사춘기 초입에 접어들어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집에 있으면 방에 박혀 게임하기 일쑤이다. 보통 대화할 시간이라고는 밥 먹는 시간에 잠깐..
그러다 보니 대화도 일상적인 것들 누구랑 놀았는지 뭐했는지...
그러다가 아들 녀석이 친구 이름을 이야기하거나 하면 '걔가 걔인가?'라고 확인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몇 번을 이야기해도 몰라~'라고 핀잔을 듣는다.
그 후에는 친구 이름이 뭐냐고 물어봐도 어차피 기억 못 하는데 알려주기 싫다고 불만을 표한다.
그때는 내심 섭섭했는데
이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내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나는 왜 말로는 사랑한다 관심 있다 하면서 정작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까. 자주 못 본다는 핑계로 아이의 생활에 대해 더 알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흔히들 아빠들은 애들 학년도 잘 모른다고 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꼴이었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못하고 구태여 변명거리로 생각한 것이 자주 대화를 못해서 그렇다는 것과
누구나 노력해도 안 되는 음치나 길치가 있듯이 또 남녀 뇌구조가 다르듯 아빠라는 존재의 천성적인 어떤 한계라는 것이었다.(변명...이었습니다)
물론 변명거리도 각자의 상황에서 볼 때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L군과의 거리음악 준비처럼... 결국 관심에 대한 결과물은 없다는 것이다.
실상 인간관계에서 관심만 가지고는 아무런 결과물*이 없다.
*여기서 결과물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정성이 쌓아 올린 인간관계라는 탑의 한 층이라고 정의해본다.
진정성 없는 관심에 상대방에게 남아있는 나라는 인간의 이미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지금까지 관심과 열정사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관심에 기대도 하고, 내가 보여준 관심에 기대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관심으로 그치게 되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도 충분히 경험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계기로 지금부터 해야 할 것, 하기로 결심한 것은
우선 나의 말뿐인 관심에 열정을 더하기로 했다.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고 했던가.
잘못을 인지하니 나의 무책임한 '관심'이 상대방에게 때로는 실망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말뿐인 관심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로 메모도 해두기로 말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진정성 없어 보이는 관심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관심이든 관심 자체는 감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심을 가져주는 만큼 행동으로도 옮겨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무책임이나 진정성이 없다고 관심자체를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정말 관심이 있다면 스스로 노력할 것이고 그런 것은 누군가가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어떤 일이든 잘하고 못하고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진심으로 노력을 다했는지는 자기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