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리를 좋아한다.
만약 내가 사는 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도 남지 않고 몽땅 사라져 무의 상태가 된다면
난 삶을 더 살아낼 자신이 없다.
귀에 거슬리는 몇 가지 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리를 좋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소리가 있다.
나는 비가 오는 날 만들어지는 모든 소리를 아낀다.
비 오는 날 홀로 남은 집에서 부드럽고 폭신한 홈웨어를 입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듣는 잔잔한 피아노 재즈 음악 사이에 섞인 어렴풋한 빗소리를 좋아한다.
비가 땅에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좋아하고, 비가 나뭇잎에 맺히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좋아한다.
차의 유리 표면에 닿는 거센 빗소리와 그 비를 걷어내기 위한 와이퍼 소리도 좋아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는 마치 나를 위한 소리의 전시회라고 생각했다.
난 그해 여름의 빗소리를 들으며 너를 떠올렸다.
일 년에 한 번, 장마철에만 열리는 소리의 전시회에 네가 나의 뮤즈가 된다.
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
비에 젖은 숲 향이 나는 빛바랜 종이에 조곤조곤 읊조리듯
나의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곱게 눌러쓴 그런 편지를 말이다.
편지의 머리말은 소리의 전시회에 나의 영감이 되어준 너에게. 정도로 쓰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