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도 배울 게 있구나

왜가리와의 전쟁

by 박현주

가족이 다 함께 걷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힘들어도 줄곧 잘 따라다니던 아이들이 어느 날부턴가 집에 있겠다 하고,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하기도 했는데 같이 나오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다 같이 걸으니 얼마나 좋아?'
자식 키우는 게 내 맘대로 안된다는 게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다 함께 나온 저녁운동.
함께하니 추운 줄도 모르겠다. 그냥 함께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좋다.
귀가 얼어 따갑긴 해도 옷에 달린 모자를 힘껏 눌러쓰고 계속 걷는다.

우리 집 현실남매는 좋다가, 싸우다가를 걷는 내내 반복한다.
"옆에 할머니 계신다. 부끄럽게 우리 이러지 말자"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시키게 한다.
운동을 하는 건지 훈육을 하는 건지, 아이들 키우는 것이 어릴 때보다 더 힘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발맞추어 걷다가, 홀로 걷기도 하다가, 이야기도 하다가,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 걷는 재미가 솔솔 하다. 혼자 걷기에서 느낄 수 없는 훈훈함이 있다. 정신이 조금 없긴 하지만.


길을 걷다 보니 왜가리가 보인다.
'먹이를 찾는 거겠지. 다 나 빠보여'
며칠 전 '왜가리'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시아버지께서 손수 지은신 집이다. 1996년에 완공하셨는데 천장도 높고 거실도 넓다.
그중에서도 제일 자랑하고 싶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집 앞연못이다. 처음 여자친구로 이 집에 왔을 때 집 앞연못에는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물레방아도 있었다.
집안곳곳 아버지 손때가 묻은 것도 많았고 악기도 잘 다루셨다. 아버지는 금손이셨던 게 분명하다.

나흘 전, 아버지께서 만들어놓으신 그 연못에 왜가리가 침입했다.
연못 속에는 약 10년 전쯤 신랑이 데리고 온 아기잉어가 어른 손만큼 커있는 게 4마리가 있었고, 건천으로 등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상처 나서 죽어가는 걸 구조해 온 회색빛 잉어도 있었다.
다친 잉어가 연못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잉어가 새끼를 낳아 수십 마리가 있었는데 4마리밖에 안 남았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다친 잉어에 병균이 있었던 것 같아 약까지 써가며 애지중지 4마리를 지켜왔는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밖으로 나가던 딸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며
"아아악~ 왜가리가 집 앞에 있어. 엄청 큰데? 그런데 빨간 것도 보이고 물고기 잡아먹다가 놀라서 날아간 것 같아"
가족모두 버선발을 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연못옆에는 붉은색 잉어가 팔딱이고 있었고, 이내 아들이 잡아서 연못으로 넣어줬는데 비늘이 뜯긴 흔적이 있다 했다.
"아놔~왜가리 저 녀석 또 오기만 해 봐라"
아들이 새총을 장전해서 연못을 사수했다. 추웠는지 곧장 들어오긴 했지만.
아니라 다를까 얼마 후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가 왜가리랑 마주쳤다. 어찌나 크던지 익룡 같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똘똘이(하늘로 간 복실이의 마지막 남은 새끼강아지)를 연못 앞으로 이동시켰다.

밥값 잘하는 똘똘이가 엄청나게 짖어대길래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먼발치에서 왜가리가 우리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 있네, 저 있다. 와~도망도 안가네"
아들이 달려가니 그때서야 유유히 하늘을 날아 곧 시선에서 사라졌다.


다음날, 간이 커진 왜가리가 똘똘이를 괴롭혔는지 구석에 박혀있다. 겁을 상실한 왜가리가 똘똘이에게 눈총 겨누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뒤로 확인한 연못엔 잉어가 한 마리밖에 안 남아있었다. 신랑이 아끼던 잉어를 다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됐다. 똘똘이도 믿을 수 없게 되자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고 그제야 연못을 덮었다.
"진작에 덮을걸"
"그러게, 아까운 잉어 다잡아갔네"
안타까웠지만 이후로 왜가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밤이지만 멀리 있는 왜가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약육강식은 동물의 먹이사슬이니 어쩔 수 없는 이치이지만 괜스레 밉고 싫었다.
좀 전까지 꼴도 보기 싫었는데 계속 걷다 보니 넓은 아량이 생긴다.
밉다 밉다 하면 미워질 것이고, 좋다 좋다 하면 좋아질 것이고.
모든 것은 오로지 내 마음에서 만들어진다는 一切有心造(일체유심조)의 마음을 배운다.
잉어는 잃었지만 왜가리를 통해 마음공부를 했다.

모든 경험은 유익하다더니 동물에게서도 얻는 게 있다. 고맙다. 이 나쁜 왜가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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