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연구한다는 너가 시로 걸어온다
행과 연이 나뉘는 길목에서 오래 기다린 눈치다
걸머진 구절들은 빛나는 문장으로 내려서지 않았단다
외투에서 떨어진 인용구는 따로 산책을 다니고
아무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곳에 도서관을 지었고
도서관을 부술 마음일 때 상징이 보이는 나날이었다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
시와 사소하게 다툴 때마다 식사를 놓쳤다
삶이 반어라는 발상으로 마침표를 찍곤 했지만
해석으로 낳은 자식들은 이튿날이면 낯설었다
따옴표로 에워쌀 문장을 허탕친 지난 밤에 대해
밤이 밤을 불 켜고 점멸하는 커서를 밀어대는 일에 대해
시상과 심상 사이를 헤매다 저당잡히는 미래에 대해
산후조리원에 두고 온 작은 우주에서 은유를 읽고
영탄법으로 딱 떨어지는 아침을 이제 믿어야 한다지만
우리의 길어지는 침묵에 대해서는 직유로 말할 수 없고
나의 처음과 너의 나중 사이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수미상관을 배웠다
(창작 21, 2023년 3월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