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나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할 일이 생겼네... 지난밤 좀 곤란한 일이 생겼다네. 그게... 어젯밤 라헬의 여종이자 아버지의 아내인 빌하의 처소에서 밤을 보냈네. 그래. 알고 있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테지. 지금 나도 무척이나 곤란한 마음이라네. 아버지의 여인과 동침을 하다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나도 나름 내 입장이라는 게 있었다네.
사실 최근 빌하가 내게 유독 친절했다네. 르우벤은 체격이 참 좋은 것 같다느니, 장자라서 그런지 역시 늠름하다든지 이런 칭찬들을 하곤 했다네. 게다가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하게 영 예사롭지 않은 것 같더군. 사실 이해도 가더군.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고 아마도 모든 부인들은 자기들에게 조금은 남편의 사랑이 더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을 거네. 하지만 아버지는 오롯이 라헬의 아들 베냐민과 요셉의 양육에만 집중하고 계시지. 다른 아내들을 찾을 때는 그들의 양육을 위해 도움을 청할 때뿐이지. 그러니 아마 외로웠을 거야. 게다가 빌하는 나이도 가장 어리니 말일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
지난밤 다 같이 저녁을 먹는데 빌하가 오늘 저녁도 독수공방 신세라며 나를 은근히 바라보더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네. 자네도 그런 생각 들지 않나?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왜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길 한단 말인가. 사실 빌하는 꽤 매력적이지. 아버지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어딜 가서든 더 사랑받는 아내가 되었을 걸세. 날 부르는 게 분명 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나도 무척 고민했네. 아무리 아버지가 찾은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그녀는 아버지의 여인이 아닌가. 그러나 농익은 여인의 유혹은 뿌리치기가 어려웠네.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안아준다면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만 한다면 빌하도 나도 좋을 것 같았네. 그래서 고민 끝에 늦은 밤 빌하의 처소로 찾아갔네. 빌하는 잠을 자고 있었지. 이불을 들추고 들어가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데 빌하가 깨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더군. 무슨 짓이냐며 파르르 떨었어. 그래. 여인으로서 먼저 유혹한 것이 부끄러워 그럴 수 있다며 내가 안으려고 하자 빌하가 화를 내더군. 자신은 나를 유혹한 적이 없다는 거야! 라헬이 이제 죽고 없으니 라헬의 여종이었던 자신이 이제 이 집안의 부인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를 챙긴 것일 뿐이었다는 거야. 라헬이 죽기 전 남편인 야곱과 자신의 두 자녀 그리고 우리 가족까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는 걸세. 부인 노릇이라니? 내 어머니 레아와 그녀의 여섯 아들이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디 감히 아들도 둘밖에 낳지 못한 빌하 따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단 말인가. 라헬이 없다면 당연히 그 자리는 내 어머니의 것이어야 하지 않나? 자신이 라헬과 가장 가까운 부인이었다는 이유로 라헬을 대신할 거라고 생각한 그 건방지고 어리석은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네. 아니 살아생전에도 내 어머니를 가슴 아프게 하더니, 마지막까지 빌하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주고 내 어머니이자 자신의 언니인 레아를 존중하지 않은 라헬에게 분노가 치밀었지. 건방지게 떠드는 빌하의 얼굴 위로 생전에 행복하게 아버지 곁에서 웃던 라헬의 얼굴이 겹쳐지더군. 내 어머니와 나의 행복을 밟고 서서 행복하게 웃던 여자! 라헬과 빌하,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 파렴치한 두 여자를 모두 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화를 내는 빌하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범했네.
그래. 화가 나서 그러긴 했지만 나도 마음이 개운한 것은 아닐세. 어쨌든 그녀의 아버지의 여인이니까.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기에 날이 밝기 전 빌하의 장막을 떠났네. 자신의 더럽혀졌다는 것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스스로 이 일을 알리지는 않겠지? 앞으로는 주제 파악을 하고 그저 조용히 지내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없을 걸세. 어차피 아버지는 빌하를 다시 찾지 않을 테니.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네. 빌하의 장막을 나설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네. 황급히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지. 그저 들짐승이나 바람에 나뭇잎이 저 혼자 날리는 소리였어야 할 텐데.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누가 본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네. 부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기를, 나의 비밀이 지켜지고 우리 가족은 제자리를 찾도록 기도해 주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네. 알려져 봐야 좋을 것이 없지. 빌하는 수치스럽게 쫓겨날 테고, 아버지는 분노하실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나 또한 입지가 곤란해지겠지. 모두를 위해 이 일은 덮이는 것이 좋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