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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Dec 11. 2023

이기기 어려운 패를 들고 있으니, 죽겠습니다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 :: 아홉 번째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량적 데이터를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승부 끝에 얻는 성취감과 쾌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게임은 사용자의 행위에 대한 피드백이 매우 빠르다. 승패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승리에 대한 보상이나 패배에 대한 손실이 즉각적이다.


지난주 개발 팀장님은 나에게 미약하게나마 밀린 월급을 해결해 볼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하셨다. 모 아니면 도인 대안이었다. 정말 잘 되면 대박, 안 되면 쪽박. 팀장님은 마지막 도박에 승패를 보기 위해 베팅을 하기로 마음먹으신 것이 확실했다. 팀장님은 해당 게임의 승률을 올리기 위해선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뜻이 담긴 무언의 제안을 하셨다.





나는 마지막 게임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게임은 이기기 위해 한다. 패배할 것이 훤한 게임, 이기기 어려운 패를 들고 있는 포커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이(Die)'를 외친다. 게임을 기권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태 나쁜 패를 가졌었다. 그것이 나쁜 패인지도 몰랐다. 언젠가는 이길 수 있으리라, 높은 상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마치 도박 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베팅하고, 좌절했다. 다이를 외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팀장님께서 제안하신 마지막 게임의 판도는 패배에 기울어져있다. 현재 회사의 상황이나, 영업 성공률을 보았을 때 잘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바라보지 않는 한 이는 누가 봐도 패배할 확률이 높다. 게임에 참여했을 때 게임에 대한 경험은 할 수 있겠으나, 수많은 위험부담을 떠안아가며 얻을 값진 경험은 아니다. 폐쇄적인 서비스와 한정적인 UX 기획 경험이 나의 커리어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누가 봐도 뻔하다.


우물 안 개구리로 우물 안에서 구슬피 울기보다, 실패하더라도 숨이 탁 트인 곳에서 좌절을 경험해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결국 나쁜 패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패배에 대한 손실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내년 초까지 약 8개월 가량의 임금체불을 버틸 자신이 없다. 당장 나에게 시급한 것은 안정감이다.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 수단은 결국 돈이고, 이를 임시적으로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간이대지급금과 실업급여다.




나쁜 패가 나쁜 패인지 모르는, 아니. 나쁜 패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는 행위를 멈추고자 한다. 질 것이 뻔 한 게임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는 컨디션이라면, 기권하는 것이 맞다. 무리하게 계속해봤자, 미련하다는 말만 들을 뿐이다. 이제는 다이를 외칠 때가 왔다.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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