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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Dec 08. 2023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고민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 :: 여덟 번째

딱히 작심하고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지는 않다. 혼잡한 출근 시간 대의 지하철을 피하기 위해 출근시간 1시간 전 (한참 열정과 의욕이 있던 시기에는 1시간 반 전 출근했었다.) 에는 사무실에 도착한다. 2년간 1시간씩 나의 성장을 위한 자기 계발을 했었다면, 나는 아마 미라클 모닝에 대한 책을 쓰고도 남았을 것이다. 남들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딱히 없다. 어쩌다 보니 습관이 잡혀 기계처럼 몸을 움직일 뿐이다. 우리 회사에는 나를 제외하고 때 이른 출근을 마치는 분이 계신다. 바로 개발팀 팀장님. 마케터에서 UX 쪽으로 직무를 바꾼 뒤, 나와 가장 많이 일을 하신 분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일만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갖게 하신 분. 사무실의 침묵을 깨는 일상 소음 중 하나가 개발 팀장님의 기계식 키보드 소리다. 다다다다. 까만 배경에 열거된 개발 코드들을 보며 키보드를 누르는 그의 소음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때는 그 소리가 열정적이고, 멋지게 들렸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팀장님의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굉장히 간헐적으로 바뀌었다. 기계식 키보드 소리를 대체하게 된 것은 깊은 한숨소리와 낮게 읊조리는 욕설이 되었다.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인사팀 팀장님과 두 번의 미팅 이후 나의 결론은 퇴사에 마음이 기울었다. 12월 말이면, 벌써 5번째 월급이 밀린다. 단 1개월 치의 월급도 올해 안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퇴사를 마음먹으며 나의 미래와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멘탈 잡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의 방법이 바로 독서. 회사에서 가장 큰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내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 뒷뒷자리에 위치하신 개발 팀장님의 기계식 키보드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요했을까. 다음 문장을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던 찰나, 개발 팀장님은 회의실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팀장님은 3개의 파트로 대화 주제를 나누셨다. 첫 번째는 나의 상태. 두 번째는 회사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상황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나의 의견. 세 번째는 나에게 필요 없는 객체. 





첫 번째 대화 주제에 대한 나의 답변은 뻔했다. 회사 대표에 대한 큰 실망감, 내가 느끼는 절망감.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들에 대해 주욱 늘어놓았다. 개발 팀장님 역시 실망감, 절망감을 갖게 된 이유는 나와 똑같았다. 퇴사를 고민하지 않으신 것도 아니었다. 초상집과 다를 바 없는 회사 분위기에 대해서도 대화를 이어나갔다. 개발 팀장님과의 대화에서 귀결되는 해결책은 결국 '돈'이었다. 팀장님은 당장 월급이 해결된다고 해서, 상실된 의욕과 의지를 복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셨다. 개발 팀장님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세우셨다. 큰 화마가 휩쓸고 간 산림을 복원하는 데는 최소 2~30년, 생태계 복원까지는 100년은 넘게 걸린다고 한다. 몇 개월간 이어진 회사 분위기와 망가진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멘탈과 심정을 복구하는 것 산불 피해를 복구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지 않을까. 


대화는 두 번째 주제로 변경되었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주요한 요인인 써드 파티와 관련된 현재 상황을 자세하게 해 주셨다. 이와 함께, 우리가 조금이라도 움직여 돈을 벌 수 있는. 아니, 밀린 월급을 받아낼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설명해 주셨다. 개발자 2명, UX 겸 UI 디자인(괴발개발임..)을 담당하는 나, 총 3명의 개발팀 인원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결국 이는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밀린 월급은 늘어나게 된다. 또한 당장에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2~3개월은 걸린다. 팀장님은 내가 없다면 어떻게든 일은 되겠지만, 임시방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을 미처 해결하지 못한 프로젝트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말을 하셨다. 그만큼 UX는 중요한 요소이고, 함께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히셨다. 리스크가 있기에 팀장님은 퇴사를 극구 말리는 표현은 하지 않으셨다. 못 받을 돈이라고 체념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돈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생긴 만큼 마지막으로 하는데 까지는 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세 번째 주제는 내가 퇴사를 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업무적으로 나에게 필요 없는 요소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퇴사나 재직 2가지 중 한 가지를 명확하게 결정한 것이 아니기에 당장 답변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팀장님은 나의 퇴사 결심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설령 회사를 나간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퇴사 실패로 볼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 이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회사에서 행동하고 느끼는 바가 나의 일상을 헤쳤다. 나는 일상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 중임을 알렸다. 팀장님은 이어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감정적인 것과 연결되니, 보다 더 냉철하게 판단해 볼 수 있는 기준을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감정적이어서 퇴사를 결심했던가? 감정적인 판단으로 퇴사를 결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퇴사에 대한 타당한 이유와 퇴사 후 대안, 대책은 명확한가? 명확하지 않다. 당장 나가도 이직은 쉽지 않다. 포트폴리오도 없으며 채용시장은 꽝꽝 얼어있다. 12월의 마지막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또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by. Sasha Kaunas (Unsplash)


선택 1. 내년 초 까지 프로젝트 진행

생활비를 빌리고 내년 2월 또는 3월까지 지금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것. 잘되면 밀린 월급을 회수하고, UX 포트폴리오에 프로젝트 1개를 넣을 수 있다. 사용자 1명 당 발생하는 수익을 따져봤을 때 시장만 잘 점유한다면 남는 장사가 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리스크가 존재한다. 도박 아닌 도박이 될 수 있다. 사용자가 없으면 끝이다. 


만약 내년 초 까지 이마저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나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퇴사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퇴사해 혼자 노동청을 방문하고, 심지어 소송까지 진행하는 것보다 덜 힘들 수는 있겠다. 



선택 2. 12월 말 퇴사하기 

당장의 이직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그럴 수 없다. 채용공고에는 경력 있는 신입 또는 제대로 된 경력직을 원한다. 퇴사를 하고 간이대지급금이나 실업급여를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아직 한 달치 정도의 생활비는 남아있으니 괜찮을 수도 있겠다. 결국 갚아야 하는 돈이지만.


간이대지급금과 실업급여를 받으면 몇 달 정도는 휴식기를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6년 간 한 달 이상 휴식기를 가져본 적 없이 이직을 반복했으니, 휴식 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배로 해야 할 것이고, 간이대지급금을 제외한 채무에 대한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다. 나 홀로 회사에 불편한 연락을 계속해서 취해야겠지. 쉽게 집중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져 깊은 동굴 속에 갇힐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일까?

아, 누가 봐도 고민할 것 없이, 주저 없이 택할 선택지는 정해져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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