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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Dec 14. 2023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저의 건승도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 :: 마지막

이번 주 금요일은, 임금체불 회사에서의 마지막 출근 날이다. 내심 클리셰가 없었으면 했던 이야기의 결말은 퇴사가 되었다. 특정 코드가 기입된 사직서에 사인을 마쳤다. 실업급여와 노동부 진정 시 필요한 서류들을 요청해 받았다. 모든 절차가 무탈하게, 조용하게 이뤄졌다. 자리에 앉아 실업급여 신청 전 미리 해둘 수 있는 절차들을 수행했다. 나의 퇴사 소식 이후, 회사의 분위기는 더욱 차갑고 고요해졌다. 속시원하게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며 사직서를 내던지는 퇴사가 아닌, 자의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떠밀리듯 퇴사하는 게 한편으론 속상하게도 느껴졌다.





퇴사를 통보하며 총 3명의 팀장님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잠시 아쉬운 탄식을 내비치시며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해 주시겠다고 하신 인사 팀장님. 좋은 선택을 했다는 말을 건네주신 개발 팀장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각광받을 수 있는 직업을 제안해 주신 전략기획 팀장님.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기업에 도전해 보세요.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 분이니까요."

"가진 능력을 묵혀두지 말고,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퇴사한 이후에도 같이 무언가를 해보면 좋겠어요."

"다양한 분야들을 찍먹 해보세요. 다양한 기술을 경험해 보고, 다뤄보세요."


자의가 아닌 회사 환경에 의해 퇴사를 결정하게 된 나에게, 팀장님들은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네주셨다. 끝에 다다른 상황에서야 나눌 수 있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들과 함께. 나의 의지가 없다면, 양분이 되는 그들의 말들은 싹을 틔우지 못할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 겪어본 임금체불. 굳어버린 회사의 분위기와 함께 꺾여버린 나의 의지와 의욕. 온데간데 없어진 성취감. 나와 다를 바 없는 상태의 직장 동료들.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경험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이 회사는 나에게 좋은 경험들도 안겨주었다. 따뜻한 사람들. 업무에 있어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수많은 피드백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한 환경.


이직을 한다고 해서 그곳이 나에게 행복만을 안겨주는 파라다이스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회사는 끔찍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아마 임금체불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때는 지금처럼 버티기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커리어에 대한 준비와 함께 마음도 운동을 해야겠다.




내일이면 떠나는 회사의 건승을 빈다. 남아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그래야 나도 받지못한 내 돈을 받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퇴사에 대한 아쉬움을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의 건승도 빈다. 그래야 퇴사 후 나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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