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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Oct 03. 2022

가을 붓으로

오늘 함께 한 모든 시간을 그려보자

가을 붓으로

가을이 오면

하늘 끝에서 부터

물들어 오는

나무 붓으로

여름을 노래하리라


뜨거웠던

그래서

숨쉬기도 벅찼던

그런 날들을

쭈욱 짜내서


빨갛게 노랗게 물든

가을 붓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리리라


그렇게 계절이 지나

손이 시려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추운 겨울이 오면


우리 뜨거웠던 여름과

아름다웠던 가을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리라



오늘 아이들과 소외계층을 돕는 걷기 대회에 참석하려고 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순환도로를 막 타려고 하는데 첫째가 뒷좌석에서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엄마, 엄마는 어떻게 아빠랑 결혼했어?"


갑자기 그게 왜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아빠가 죽자살자 따라다니다가 자기를 살려달라며 애원해서 결혼했지~^^."


신랑은 운전하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얼굴을 하며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제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웃고, 전 제대로 한방 먹여서 좋아서 웃고, 신랑은 억울함을 풀 수 없어  어이없어 웃다 보니 차 안이 들썩들썩 웃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따라쟁이 6살 둘째가

"엄마! 난 형아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나 좀 살려달라고 해서 형아랑 결혼할 거야!"


아직 결혼이 뭔지도 모르는 두 녀석을 보며 또 웃었습니다. 이렇게 별일 아닌 작은 이야기에 함께 웃다 보면 행복이란 게 자연스럽게 가슴을 채웁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만나 가정을 이룬 덕분에 요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사는 동안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서운함에 서로 상처를 주며 화로 서로를 태워버릴 듯 힘겹게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서로 물러설 지점과 안아줄 시점을 가늠할 수 있는 관계로 성장한 것 같아요.


그러니 봄날 씨앗을 뿌린 후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한낮의 열기로 머리가 타버릴 것 같은 여름날을 견딘 자의 가을은 분명 풍성하리라 생각됩니다.  계절이 순환하듯 그렇게 분명히 오고야 말 우리 모두의 가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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