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작고 눈부신 것들을 다시 보다.실화 에세이

— 살아 있음의 기쁨에서 나누는 삶으로

by 운조


[1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화] 다시 걷기, 무너지고 또 일어서다

[3화] 집으로 돌아온 물결

[4화] 작은 일상, 다시 배우는 시간

이번 화에서는 살아 있음의 기쁨을 회복한 그다음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 다시 빛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삶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담고자 합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붙들며 살아갑니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기적의 다음 장을 열어줍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태복음 6:26-27)


오늘,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나섰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길가에는 작고 여린 들꽃들이 소리 없이 피어나 고요한 아름다움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참 예쁘다. 내가 살아 있길 참 잘했다.”

예전에는 그저 ‘기적’이라 불렀던 나의 회복이,

실은 공중의 새조차 돌보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였음을 깨달았다.

만약 이 생명이 다시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토록 조용하고 깊은 기쁨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들꽃 하나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 순간, 나는 다짐했다.

남아 있는 삶을, 가족을 더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가자.

이웃과도 따뜻한 눈빛을 나누며 온기를 전하자.

그리고 지금, 나처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오늘도 살아갈 가치가 있어요.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어느 날,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필리핀 선교 가지 않을래?”

망설였다.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보자.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그렇게 우리는 필리핀 오지의 작은 마을에 유치원을 세우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현지 선교사님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 땅에 작지만 온기로 가득한 유치원이 세워졌다.


작년, 나는 직접 그곳을 찾았다.

주변에서는 걱정이 이어졌다.

“비행기 타는 건 위험해요. 아직 회복 중이잖아요.”

아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절대 가지 마세요.”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결연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도 무사히 다녀왔다.

선교를 간다고 말했을 때, 목사님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건… 정말 기적입니다.”

그분은 알고 계셨다.

의식도, 움직임도 없었던 나의 지난 시간을.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그 고통의 나날들을.

그랬던 내가 다시 걷고, 말하고, 선교지에 간다는 말에

그분은 조용히 말했다.

“선교지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처럼 다시 얻은 이 생명을, 이제는 흘려보낼 때임을 느꼈다.

필리핀의 마을은 우리가 사는 곳과 너무도 달랐다.


비포장도로 위를 오토바이와 삼륜차가 지나가고, 풀숲 사이로 허름한 판잣집이 이어져 있었다.

빨래줄엔 알록달록한 옷들이 나부끼고, 아이들은 맨발로 흙길을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우리가 왔다고, 그들은 귀한 돼지를 잡아 정성껏 대접해주었다.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망설이던 순간,

그들의 따뜻한 웃음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마음을 드립니다.”

그 밥상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정성과 존중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소박한 식탁에서, 진심이란 무엇인지를 배웠다.

농촌 마을에는 벼농사가 한창이었다.

닭과 돼지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삶은 거칠어 보였지만, 그들의 눈빛은 단단하고 평화로웠다.

그들의 일상은, 말 없는 존귀함으로 내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 여정 내내, 친구는 묵묵히 내 가방을 챙겨주었다.

비탈길에선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낯선 환경에서도 내 걸음을 기다려주었다.

“괜찮아?”

짧은 그 한마디에 담긴 깊은 배려.

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 떠났지만,

돌아보니, 내가 더 많은 따뜻한 손길을 받은 여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가끔은 손에서 컵을 놓치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완전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작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향한 진심 어린 나눔 속에서,

살아 있음의 기쁨은 찬란하게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쁨은, 언젠가 내가 받은 기도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



다음 이야기 예고

6화. 보이지 않는 싸움

— 아픈 몸과 살아 있는 마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 다 괜찮아 보이시네요.”

하지만 머리카락 아래에 감춰진 흉터,

시린 통증과 복부의 불편함은

지금도 조용히 싸우고 있는 나의 현실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겉으로는 다 나은 것처럼 보여도,

아직 몸속 깊은 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완치와 회복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