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과 학대 사이
“니그들 그냥 고아원에 다 갖다 버린다.”
아빠가 기분이 안 좋으면 으레 하는 말이었다. 어린아이는 상처를 받지 않았다. 왜냐면 아빠는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지껄이는 인간이었으니깐. 그래서 아빠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을 써야 할 때는 그 말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였다. 아슬아슬한 순간.
밥이 먹기 싫었다. 반찬이 맛이 없었으니깐. 아빠는, 국을 좋아하지도 않고 건더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항상 국을 깨끗이 다 마시라고 했다. 아빠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대충 마시는 척하고 남기면 어느 날은 통과, 어느 날은 다시, 국그릇에 붙은 건더기까지 다 먹으라고. 그날은 운수 나쁜 날이었다.
식사시간 내내 기분이 안 좋던 아빠는 결국 아이의 반찬투정에 밥상을 엎어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팔을 잡고 잠가놓은 집 문을 열어 집밖으로 던져 버렸다.
“니 같은 거 필요 없으니 나가.”
엄마가 말릴 새도 없이 현관문은 닫혔고, 쫓겨난 아이가 문 앞에서 악을 써도 열어주지 않았다. 반찬투정을 하다 집에서 쫓겨나다니. 황당한 상황에 애초에 아빠에 대한 기대 따위는 없던 아이는 짜증만 날 뿐이었다. 그냥 지금 자신의 처지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거리를 배회하는 거 말고는 없기에, 혼자서 동네를 배회하다 다리가 아파오자 아파트 옆동 1층 필로티 밑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머어어어엉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는데 어느새 엄마가 나타났다.
“집에 가자.”
집안으로 들어가니 여전히 골이 틀린 아빠가 있었지만 아이에게 더 성내지 않았다. 아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있었다. 그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엄마는 그날을 나에게 사과했다. 너를 발견하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해야 했었다고. 엄마랑 아빠랑 둘 다 너무 잘못했다고. 단순히 반찬투정하다가 쫓겨난 줄 알았기에 사실 그날은 특별할 것도 없던 날인데, 왜 굳이 많고도 많은 날 중에 그날을.
사실 그날은 내가 대학병원을 다녀온 날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통해 심장병이 발견된 날. 학교에서 받은 특수검진에서 아이의 심장소리가 이상하니, 병원에 꼭 데려가보라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집 근처 내과를 들렸고 내과에서는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엄마 손에 이끌려 커다란 병원 밑으로 들어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엄마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아이의 심장판막에 염증이 있어요.”
참 희한한, 이름도 길고 어려운 병명은 이제는 선진국이 돼버린 한국에선 희귀한,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에서나 많이 걸리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아빠는 대학병원에서 나온 수십만 원의 영수증을 보며 분노했고, 돈을 아끼기 위해 난방도 틀어주지 않던 구두쇠니깐. 추우면 옷이나 겹쳐 입으라고, 뜨거운 물도 큰솥에 가스불로 끓여 부어 쓰게 했으니깐. 그래서 아이는 병에 걸렸고, 푼돈 아끼려다 병원비로 돈을 크게 날릴려니, 돈만 드는 아이는 버려야지.
“니네가 내 지갑에 있는 돈 다 훔쳐가는 도둑년들이네.”
돈, 돈, 돈.
당신, 엄마랑 같이 돈 벌었잖아. 왜 돈은 당신이 혼자 다 쥐고 싹 다 도둑취급하는 건데. 자식이 도둑 같으면 애초에 씨를 뿌리질 말았어야지. 돈을 쥐고 끝까지 사람 괴롭히면서, 자기는 브랜드옷으로 치장하고, 자식을 병들게 한 인간. 인간이 아닌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