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간귀의 식당을 간 김에 뒷골목도 한 바퀴(D-34)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2024년 방영되었지만, 인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출연자가 운영하는 일부 식당은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라고 하던데, 이번에도 아들이 열일을 해서 현상욱 셰프(닉네임 간귀)가 운영하는 남영동 '키보 에다마메' 예약에 성공했습니다.
전 처음에는 닉네임이 '간귀'라고 해서 별로 안 좋은 의미로 생각을 했는데, 아들이 '간을 귀신 같이 맞춘다'라는 의미라고 설명해 줘서 오해가 풀렸네요.
우중충한 토요일 오전인데 주차할 곳도 마땅치도 않고, 서울은 왠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기도 부담이 되어 지하철을 이용하여 도착했습니다. 사실 지난번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셰프의 '도량'에 갔을 때, 도심 내 시위와 대학 수시전형 일정과 겹쳐 예약시간에 맞춰 도착하는데 엄청 고생을 했기 때문이죠.
남영동의 추억
남영역에 내려서 '키보 에다마메'를 찾아 길을 걷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2001년 원효로에서 근무할 때, 퇴근 후 술 한잔은 주로 이곳 남영동에서 했습니다.
지하철역이 가까이 있어서 회식이 끝난 후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니까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키보 에다마메'의 문은 열려있지만, 아직 입장은 안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제 취미이기도 한 ‘남은 시간 동안, 동네 한 바퀴 돌아보기’를 했습니다.
다른 도심에 비해 아직도 개발이 안 된 곳이 많이 있어서 인지, 마음만은 포근해지는 그런 정감 어린 풍경입니다. 길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다 우연히 좁은 골목길을 지나쳤는데, 어릴 적 놀던 골목길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다방구(술래잡기)를 하면 놀다, 어머니가 "00아~ 그만 놀고 밥 먹자"라고 소리치시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각자의 집으로 뛰어갔었지요. 그때의 추억이 묻어나는 골목길입니다.
골목길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미국 대사관 부속 건물 쪽으로는 기존 구옥을 개보수하여 만든 소호(SOHO)도 여러 곳 보입니다. 그리고 정말 예스러운 느낌의 '스테이크'라고 쓰인 간판도 보이네요. 나중에 한번 어떤 스테이크인지 먹어 보러 올 생각입니다.
이제 시간이 되어 '키보 에다마메'로 가보니 여러 명이 입구 앞에 모여 있네요. 이윽고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면서 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실내 공간이네요.
이 가게의 이름이 ‘키보 에다마메’인데, 여기서 ‘에다마메’는 일본어로 ‘풋콩(완두콩)’을 뜻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가게 밖에도 안에도 연두색 완두콩 모양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젓가락도 연두색이네요.
이곳은 태블릿으로 주문하는 방식입니다. 저희는 미리 무엇을 먹을 것인지 생각을 하고 왔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주문을 했지요. 저희가 주문한 메뉴는 '마파두부와 밥', '치킨 가라아게 난반', '고등어볶음밥', '시오아끼소바', '시오콘부 에다마메', 그리고 '에다마메 하이볼'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시그니처 술인 ‘에다마메 하이볼’인데, 연두색을 띠고 있으며 화룡정점(畵龍點睛)으로 맨 위에 완두콩 하나가 올라가 있네요. 그리고 함께 나온 ‘시오콘부 에다마메’입니다.
이게 뭐가 맛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 개를 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있어 술과 함께 전부 먹었습니다. 생긴 것은 별로인데 맥주 안주로도 딱 적합하고 심심풀이로 먹기에도 좋습니다. 다만 겉 부분에는 양념이 좀 강하게 되어 있어 계속 먹다 보니 입에서 짜다는 느낌이 듭니다. 계속 손이 가는 게 마치 ‘새우깡’ 같네요.
다음으로 나온 음식은 ‘치킨 가라아게 난반’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치킨 샐러드라고 보이는데요. 치킨도 바삭하고 야채와 생강을 소스에 섞은 후 함께 먹으니 별미입니다. 이것도 ‘도량의 양고기 튀김’처럼 맥주 안주로 딱입니다.
이어서 나온 음식이 유명한 ‘고등어볶음밥’인데 그냥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맛인지 감이 안 잡히기는 합니다.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가시를 모두 제거한 튀긴 듯 구운 듯한 고등어를 부셔서 밑에 있는 달걀 볶음밥이랑 비벼서 먹으면 된답니다. 고등어의 비릿한 맛은 초생강을 같이 드시면 해결이 됩니다. 저는 비린 생선을 잘 먹어서 그런지 비린 맛을 잘 못 느끼겠더군요.
다음은 ‘시오아끼소바’입니다. 늘 그렇듯이 따뜻함으로 인해 가시오부시가 마치 살아서 움직이듯이 꿈틀댑니다. 새우, 삼겹살, 양배추, 숙주, 양파 등이 잘 볶아져 있고 면발도 양념이 적당하게 베어 맛있습니다. 여기도 초생강은 빠지지 않고 나왔네요.
끝으로 나온 마파두부와 밥입니다. 중식당의 마파두부와는 좀 다른 맛인데요. 살짝 매콤한 맛이 나고 얼얼한 마라의 맛도 있습니다. 보기에도 고추기름과 마라가 보이기는 합니다. 함께 나온 밥과 같이 먹어도 되는데 저는 고등어볶음밥에 비벼서 먹었더니 이것도 맛의 조합이 괜찮네요. 두부도 탱글탱글해서 쉽게 부서지지 않으니 떠먹기도 좋습니다.
제가 간을 거의 안 하거나 약하게 먹는 편이라 그런지, 저한테는 약간 짜다고 느껴지는 음식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같이 간 아내와 아들은 간이 잘 맞아서 아주 맛있다고 하네요.
저도 음식의 양과 맛은 흠잡을 곳이 없다고 느끼는데 좀 짜기는 합니다.
참! 저녁에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오시면 술 마시기에 딱 좋은 분위기와 음식들이네요.
3명이 4개의 음식을 시켰는데 맛있어서 그런지 양이 적거나 많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고, 적당하게 배부를 정도입니다. 저희는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먹어서 그럴 수도 있네요. ^^
맛있는 음식도 먹고 모처럼 옛날 생각이 물씬 나는 뒷골목도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다른 흑백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이 여러 곳이 있다고 하니, 다른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더 올 것 같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