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나왔다. 나들이 갈 때마다 즐겨 입던, 검은색과 노란색이 마블링처럼 섞인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났다. 뭔가를 듬뿍 해주고 싶은데, 그 마음이 줄줄 흐르는데, 나는 멀뚱히 고민만 하고 있었다. 바보가 된 걸까, 아무것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뭘 해드려야 하나, 엄마가 뭘 좋아했었지? 그냥 엄마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발이 붓도록 돌아다녔다. 아차, 외식을 좋아했었지. 돌연 떠오른 생각에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으로 엄마를 이끌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사드렸다.
화면이 꺼지고, 드라마처럼 다음 테이크로 넘어갔다. 엄마가 목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은 탓일까, 음식물이 넘어가지 못하고 죄다 엄마의 좁은 목구멍 속에 쌓여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살가죽이 늘어진 목언저리는 검게 죽어갔다. 엄마가 바닥에 쓰러졌다. 엄마만큼 바짝 타들어가고 있던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번엔 절대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거야, 반드시 엄마를 살리고야 말 거야. 꺽꺽거리는 엄마의 입속으로, 목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잡히는 대로 끄집어냈다. 액체가 섞인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의 얼굴에 서서히 분홍빛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를 살렸구나,
엄마는 고맙다고, 그만 가보라고 손짓을 하며 아득해져 갔다.
꿈에서 깬 후, 우두망찰 그대로 한참을 누워있었다. 아이같이 이것저것 사주는 대로 드시며 좋아라 하던 엄마의 표정, 음식물이 목에 걸려 부들부들 떨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다. 재수 꿈인지, 흉몽인지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살아생전 해드리지 못했던 후회들이 꿈으로 반영된 것이리라.
뉴질랜드의 눈이 아프도록 진한 하늘을 볼 때면 엄마가 생각난다. 그 하늘아래서 엄마랑 깔깔대고 싶다. 육질이 좋은 스테이크를 먹을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도 고기 좋아하셨는데. 한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연아도 다녀갔다는 한국숯불갈비집도 내가 아는데, 엄마 입맛에 쩍쩍 달라붙을 텐데. 엄마가 끔찍하게 이뻐하던 손주 녀석이 영어로 얘기하는 모습을 본다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도록 웃고 또 웃겠지?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는 사양 않고 한달음에 비행기에 오를 텐데.
하늘의 색깔이 선명할수록, 무지개가 잡힐 만큼 가까울수록, 스테이크의 육즙이 달게 느껴질수록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다. 비가 온 후, 말갛게 씻긴 풍경이 오늘따라 징그럽게 아름답다. 야속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