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연가

by 김선희

식탁 위에 키친타월을 깔고 콩나물을 다듬는다. 엄지와 검지로 콩나물의 꼬리를 잡고 손톱으로 하나씩 분지른다. 콩나물은 자기 꼬리가 떨어져 나가는 걸 멀뚱히 바라본다. 손끝에서 똑똑 부러지는 소리가 제법 듣기 좋다. 똑똑, 똑똑똑. 몇 분 동안 반복한다. 그러다가 소쿠리 안에 소복하게 쌓여 처분만 바라고 있는 콩나물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이걸 언제 다 한담, 한숨과 함께 콩나물 한 움큼을 손에 쥔다. 대가리를 밑으로, 꼬리를 위로, 거꾸로 집어든 다음 콩나물들의 키를 맞춘다. 같아 보여도 키가 조금씩 다른 콩나물들이 비죽거리며 손안에 잡혀 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콩나물 꼬리를 한꺼번에 잡고 비튼다. 찌익, 콩나물들이 신음을 토하며 죽어간다. 우두둑 떨어지는 콩나물의 꼬리들을 일별 한다.

레인지에 물을 올린다. 물이 끓고, 콩나물이 들어가고,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연기 속에 코를 박는다. 비릿한 냄새가 날아가면 반은 건져서 무치고 반은 그대로 국이 된다. 일련의 행동을 마친다. 콩나물 하나로 두 가지 반찬을 만들어 놓고 나니 한갓지다. 아들은 또 콩나물이냐고 투정을 부린다.

뉴질랜드에서 남들은 뭘 먹고 살라나, 김밥을 만들려고 한국마트에 갔다가 벽돌만 한 햄을 그대로 꽁꽁 얼린 걸 보고 기겁을 한다. 도로 내려놓으면서 생각한다. 이건 톱으로 썰어야 하나? 밍밍하고 씁쓸한 시금치도 내키지 않는다. 김밥은 글렀다. 그렇다고 밀키트가 다양한 것도 아니고, 생선코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월척들 뿐, 잘 다듬어진 갈치나 동태 같은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봄이면 냉이나 달래가 있기를 한가, 여름이면 토란대나 아욱, 겨울이면 해풍을 맞고 추위를 견딘 달짝지근한 섬초가 있기를 한가,

로컬마트도 한 바퀴 돌고, 한국마트까지 갔다 왔는데 정작 사온건 콩나물뿐이다.

콩나물을 다듬는다. 물을 올리고 콩나물을 삶는다. 반은 무침, 반은 국이 된다. 오늘은 두부도 사 왔다. 두부를 튀긴다. 기름 속으로 들어간 두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겨진다. 기름의 파편들을 주욱 따라가며 닦는다. 콩나물 한 봉지를 더 뜯는다. 두부튀김에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콩나물과 함께 넣는다. 일련의 행동을 마친다. 콩나물로 세 가지 요리를 해낸 나는 마음이 충만해진다. 주방이 온통 콩나물의 잔해들도 참담하다. 잘린 대가리, 부러진 허리, 끊어진 꼬리.

아들의 반찬투정은 늘어만가고 나의 보잘것없는 요리실력은 그나마 퇴색되어 간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하버브리치를 건너 한국마트에 간다. 분명 콩나물을 사러 가는 건 아닌데 콩나물만 사 올 것 같아 미리 절망을 한다. 남들은 뭘 먹고 살라나. 아귀찜 위에 양념을 머금은 채 소복이 쌓인 토실토실한 콩나물이 그리운 날이다.

안 되겠다. 텀 2가 끝나고 방학이 오면 한국에 갔다 와야겠다. 벌써부터 침샘이 축포를 터뜨린다. 금세 기분이 좋아져 음악을 켠다. 신나는 리듬이 흘러나온다. 콩나물대가리들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