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도 어묵을 먹으면서 채소를 주문했다. 어묵 국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채소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뭔가 기분이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집에 가서야 내가 어묵만 먹고 채소만 받고 아무에게도 돈을 내지 않고 왔다는 걸 알았다. 곧바로 돈을 치르러 갔더니, 분식집 여자는 "그냥 서비스로 드셔도 되는데"하면서 웃고, 채소가게 알바 여자는 "어머, 난 받은 거 같은데"해서 주인 여자의 어김없는 눈 흘김을 받고, 나는 내 정신머리가 그나마 붙어 있는지 나가는 중인지 모르겠고, 그랬다.
권여선 [술꾼들의 모국어]
전통시장이 이래서 정겹다. 돈을 치르지 않고는 빠져나가기도 애매한 대기업 마트나 백화점과 다른 맛이랄까.
흔히 문장은 짧게 써야 한다, 그래야 명료하다고들 한다. 나도 가능하면 그러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데, 사실 만연체가 꼭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권여선처럼 잘 써버리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다. 더구나 전통시장 정경을, 거기 깃든 사람들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대목에는 어쩌면 만연체가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물론 고매한 판사 영감들이 쓰는, 도무지 끝나지 않는 문장은 용납하기가 어렵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