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운동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일화가 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었다. 가족끼리 2대 2 배드민턴 게임을 하러 가자고 하면 억지로 따라가 겨우 셔틀콕을 맞추는 정도였다. “우리 딸은 배드민턴을 쳐도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어.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을 받아야 하는데 서 있는 자리로 오는 공만 받았지.” 맞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처음 시작한 운동이 요가였다. 한동안 요가를 하다가 조금 더 활동적인 운동을 해 보자는 생각에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당시 운동을 선택하는 기준은 ‘정적인 운동’이었다. 활동적인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다 40대 후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며 체중이 급격히 줄었고 근력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해보니 예상과 달리 근력 운동이 나와 잘 맞았다. 나는 정적인 운동이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케틀벨의 매력에 빠졌고, 다양한 운동을 경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쉰이 넘어 시작한 크로스핏을 통해 내 운동 인생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고 있다. 크로스핏을 하면서부터 계단을 올라갈 때 숨이 덜 차고, 더운 여름에도 피로감이 줄었다. 체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일상을 단단히 지탱해 주는 든든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쉰이 되었는데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너는 뭘 할 때 행복해?”라는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면 순간 당황하게 된다. 그동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고, 요가처럼 정적인 운동을 좋아한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사람 만나는 걸 즐긴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늘어난다. 스스로에게 내렸던 나에 대한 정의가 흔들리면 생각이 많아진다.
한때 나는 ‘50대의 나’라는 퍼즐이 쉰이 되면 완벽하게 맞춰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였다. 쉰이라는 시기는 인생 퍼즐의 완성 지점이 아니라 내 인생이란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맞춰 나가야 할 퍼즐 조각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단정 짓기보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전제로 살아가려고 한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뒹굴거리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한참 고민하는 습관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젠 '그냥 한번 해 볼까?' 호기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라고 정의 내렸던 나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