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에 관한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것은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퇴직 후 2년, 많은 것들을 시도했습니다. 3~4가지 일들이 내 일상의 축을 이루며 착착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퇴직 후 1~2년은 그냥 쉬어도 좋으련만 그동안 살아왔던 습관은 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계획을 짜느라 분주했습니다. 단기, 중장기 계획이 짜여 있어야, 삶이 각종 키워드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습니다. 안심은 얻었지만 항상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신호가 가득한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고 퇴직 전보다 활동량이 줄었고 몸 여기저기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던 터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체력을 챙기는 게 더 이상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동안 운동은 내 일상을 다 하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하는 것, 한 번도 운동이란 끈을 놓지 않고 살았지만 운동이 내 일상의 큰 부분이라 여겼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50의 운동’은 그렇게 가볍게 정의 내려지면 안 되는 키워드였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일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힘을 만들어 냅니다. 젊었을 때처럼 선택사항이 아니고 이제 운동은 가장 큰 자리로 잡아야 할 때가 된 겁니다. 그동안 벌려놓았던 다양한 키워드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내년으로 미루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과감히 삭제했습니다. 삶에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순위를 운동으로 세팅했습니다. “운동을 하고 난 다음에 다른 걸 하자”
처음엔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연습하니 운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는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할 일상이 된 거죠. 주 3~4회씩 빠지지 않고 크로스핏 수업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상 방지를 위해 30분 정도의 준비운동도 미리 하고 갑니다. 크로스핏을 하지 않는 요일도 걷기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늘려갔습니다. 그런 일상이 한 달, 한 달 쌓이다 보니 피곤함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피곤함이 줄어드니 일상이 생기가 있고 활기차졌습니다. 힘겨운 여름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에 힘이 생기니 글을 쓰고 싶어 졌습니다. 퇴직 후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이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키워드를 중년으로 잡다 보니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고 일단 글 쓰는 재미가 없고 힘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쓸 기력이 없었습니다. 힘이 없는데 글을 쓰려니 마른 수건을 짜내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재미있게 하는 크로스핏을 가지고 글을 쓰자 생각하니 글이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때는 운동을 기록하는 수준으로, 때론 일기처럼, 때론 에세이처럼 다양한 형식의 글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은 키워드 잔치였습니다. 생각이 많고 현실에 만족하지 않으니 지금 살고 있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보다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꾸며 버킷 리스트 같이 해야 할 목록을 매일 만들어댔습니다. 퇴직 후에도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크로스핏을 하며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을 즐겁게 살아내면 노력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일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그 무언가가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행복한 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