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할 때 내 몸무게는 40kg 중후반이었다. 대학교 시절부터 40대 초반까지 거의 같은 체중을 유지했다. 당시에는 힘이 부족했고 일상을 버텨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중에 겨우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소파에 쓰러지기 일쑤였고, 주말에는 대부분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근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무기력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회사 복도를 걷다 반대편에서 오던 후배와 복도 중앙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 후배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가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데 성냥개비 같은 걸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아요.” 십여 년 전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 여성의 이상적인 몸이 ‘가늘고 날씬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요즘은 여성 신체를 바라보는 기준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가늘고 날씬한 라인이 선망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강하고 힘 있는 몸을 가진 여성이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특히 크로스핏 짐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체육관에서는 단단한 근력을 가진 사람들이 유난히 빛나 보인다. 호흡을 가다듬고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 데드리프트와 스쾃으로 다져진 탄탄한 허벅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신운동인 버핏과 바이크 운동을 마치면 바닥에 땀방울이 흩뿌려진다. 물티슈로 바닥을 닦으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다 보면 체육관 전체가 활기찬 에너지로 채워진다.
얼마 전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시작한 직장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요즘 헬스장에서 여성들이 운동하는 모습 보면 정말 대단하다. 무게 드는 걸 보면 나보다 훨씬 많이 든다. 경이롭다”라고 말했다. 미디어 속 여성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다. ‘강철부대 W’에서 해머로 문을 단번에 부수고 무거운 배를 협동해 드는 여군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감탄한다. 철인 3종에 도전하는 ‘무쇠소녀단’ 같은 프로그램도 여성의 신체적 성장과 도전을 조명하며 관심을 받았다.
내 조카들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 친구는 댄스 동아리에서 5년 넘게 춤을 추고 있고 최근에는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또 다른 친구는 태권도를 주 4~5회 수련한다. 처음에는 “잘 놀다 와”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태권도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고 이제는 “재미있게 수련하고 와”라고 말하게 됐다. 가족 모임에서는 태권도 품새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내가 크로스핏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도 “나이 들어 그런 과격한 운동 하다 다치면 어떡해?”라는 걱정보다는 응원의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여자아이들이 농구를 하면 “여자들이 무슨 농구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지금은 쉰이 넘은 내가 조카들과 운동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흐뭇하고 감사한 변화다. 그리고 조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인식이 더 건강한 방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