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독에 물 붓었던 겨울

by 이곰

겨울 아침 매일 식물에 물을 주는데도

그다음 날 습도측정기를 꽂으면 대부분의 식물 상태가 ‘드라이’로 떴다.

여름도 아닌데 이렇게 매일 물을 줘야 하나 이상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은

뿌리가 자리 잡지 못해 물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했다.

겨울에 이렇게까지 물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매일 이 상태가 반복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거다.


겨울 난방 때문일까?

식물등 때문일까?

통풍용 서큘레이터 때문일까?


식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일이 생겼던 터라

이유를 찾는 동안에도 식물에게 계속 물을 줘야 했다.

답을 금방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의 석 달.

정신없이 물시중을 들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차분히 상황을 다시 살폈다.


식물 가게에서 산 식물들은 물 주는 주기가 안정적이었다.

문제는 온라인에서 구매해 내가 분갈이했던 식물들이었다.

자연스럽게 흙이 의심됐다.


그래서 온라인몰에서 구매했던 흙 성분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찾아보았고

결국 이유를 찾아냈다.

이유는 내가 사용한 흙이 ‘배수 최극대화’ 흙이었던 것이다.


식물에 맞게 흙 배합하는 게 자신이 없어서 배합된 흙을 샀는데

물을 주면 식물이 물을 먹을 새도 없이

바로 화분 밑으로 물이 빠지는 배수가 좋은 흙이었던 거다.

관엽식물용 흙이라는 설명만 믿고 그대로 쓴 게 문제였다.


결국 겨울 내내 내가 식물에게 준 물을

식물은 거의 마시지 못한 채 겨울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찔했다.

무식하게라도 매일 물을 주지 않았다면 식물은 굶주림을 넘어 죽었을 수도 있었다.

미숙한 식집사도 고생했고, 그런 식집사를 만난 식물들도 배고팠던 겨울이었다.

나는 평소 '모든 경험은 좋은 경험'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언젠가 부회장 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조카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조카가 짜증 내며 말했다.


“고모, 그런 건 좋은 경험 아니야, 그냥 나쁜 경험이지.”


그 말이 맞다. 세상사 다 아는 척하면 안 된다.

나의 미숙함 때문에 식물도 나도 고달픈 겨울을 보냈다는 생각과

석 달 동안 물시중을 들었던 게 순간 짜증이 났다.

그리고 이유를 알고 나니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맥이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조용히 웃게 됐다.

그래도 그 덕분에 석 달 동안 식물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열심히 '연구'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좋고 나쁨을 나누는 일이 크게 의미 없게 느껴진다.

지나고 나면 결국 남는 건 경험이고

그 경험 덕분에 조금 덜 서툰 식집사가 되었으니까.


진부하지만

나쁜 경험도 결국 좋은 경험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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