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난 뒤에야 보이는 것들

by 이곰

"너는 감정이 너무 메마른 것 같아."


어느 날, 엄마와 등산을 함께 하는데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공기가 좋다, 풍경이 멋있다, 꽃이 화려하다며 연신 감탄하는 엄마에게

내 대답은 늘 비슷했다.


“어, 이쁘네, 독특하네.”


지금 생각하면 참 건조한 표현이다.

그 당시 나는 나무는 그저 나무고, 꽃은 그저 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삶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던 시기라 주변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세상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고 느꼈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여름이었다.

온통 초록뿐인 풍경 속에서 자줏빛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색이 눈에 띄네”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꽃이 참 예쁘네”가 되었고

“이 더운 여름에 이런 꽃을 보여줘서 고맙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꽃나무 이름을 찾아봤다.

'백일홍'

백일 동안 붉게 꽃을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한단다.


내가 꽃나무 이름을 찾아보다니....

낯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초보 식집사가 된 첫해.

관엽식물을 좋아해 거실을 온통 초록으로 채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거실 정원을 바라보다 문득 느꼈다.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꽃을 찾다가 시클라멘을 들였다.

겨울 내내 꽃을 보여준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 생각보다 훨씬 잘 자란다.

꽃이 올라오는 과정도 독특하고

꽃 모양도, 잎 무늬도 하나같이 개성이 있다.

지금도 거실 한쪽에서 계속 꽃을 준비하며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엄마는 멋있는 풍경을 보고도 “독특하다”라고 말하던 딸이

식물을 키우고, 거실 정원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 가족 톡방에 올리니 신기하신 모양이다.


나 역시 신기하다.

모든 것이 다 그저 그랬던 내가

이제는 나무가 보이고, 꽃도 보이고

세상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모양새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도 나이 듦이 주는 장점일까.
아니면, 거친 시간을 버텨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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