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코털 트리머를 사드렸다

by 김이안


2주 전 아버지가 내가 타던 승용차를 가지러 오셨을 때였다. 1시간 40분여를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를 15분 정도 타고 집에 도착하신 아버지.



감자탕을 주문해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때 아버지의 코에서 코털이 여러 개 삐져나온 걸 봤다. 코를 다시 만진다고 해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긴 코털이었다.



아버지가 집으로 다시 올라가시고 며칠이 지나도 아버지의 그 코털이 마음에 걸렸다.



'집에 코털 깎는 기계가 없으신가? 하긴 오랜만에 집에 오셨으니 없으실 만도 하겠다'



초등학생 때 화장실에서 코털 깎는 기계를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 꽤 오래전부터 아버지는 코털 트리머를 사용해오셨고, 내 기억으로도 그동안 아빠 코에서 코털이 보였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코털 트리머가 지금 아빠에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내 것도 하나 같이해서.




그동안 코털 트리머를 써본 적이 없다. 가끔 긴 코털이 보이면 족집게로 뽑기만 해도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빠 꺼를 주문하면서 나도 처음으로 써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광고 문구에 있는 그야말로 '신세계'라는 말에 넘어간 듯하다)



부모님 집에 배송이 됐다는 문자를 확인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그때 우리 집 왔을 때 코털이 보여서 주문했어요. 이제 손녀들이랑 자주 보고 놀아줘야 하는데 아빠 관리 좀 잘해야 될 거 같아서요. 내 것도 똑같은 걸로 하나 같이 샀어요."



아버지가 껄껄껄 웃으시는데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셨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레야 잘했다. 안 그래도 내가 요즘 너희 아빠 코털이 보여가지고 계속 신경이 쓰여서 잘 좀 깎으라고 했는데 그동안 가위로 깎았나 봐.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야. 잘했다 이레야."



집 화장실에 놓여 있는 코털 트리머를 볼 때마다 은은하게 웃음이 난다. 부모님 집에도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을 트리머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이가 들수록 동질감이 느껴지고 친구 같은 정이 생기는 아버지. 아버지에게 꼭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꼭 주문해서 드리고 싶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줄 수 있다는 작은 기쁨을 아버지 덕분에 참 오랜만에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계시다는 게, 그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좋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생각해볼수록 아버지와 내가 참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더 선물하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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