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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Jan 31. 2024

아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생겼다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러 포항에 내려갔다. 첫째 아이가 방학을 한 후 아내가 당분간 친정에서 지내며 이제  태어난 지 50여 일이 된 둘째 아이를 돌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거의 3주 만에 만난 아내는 한결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아무래도 친정에 있으니 어머님이 아기를 교대로 돌봐주시기도 하고, 먹는 것도 집에 혼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잘 챙겨 먹을 수 있었을 거다. 무엇보다도 옆에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계속 있다는 게 아내에겐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첫째 아이가 두 돌이 막 지났을 무렵, 2개월 정도 아이를 낮에 홀로 돌본 적이 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방학기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아침을 해서 먹이고 좀 정리하다 보면, 점심을 먹여야 하고, 다시 또 뒷정리를 하면 어느덧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잠깐씩 반짝이는 행복감이 들기도 했지만, 뭔가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대한 허망함과 아쉬움이 있었다. 분명 아이에게 집중하고 그에 따른 집안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지만 내가 계속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을 짓눌렀다.



이 시기의 경험 때문에 아내가 집에서 홀로 갓 태어난 아기와 씨름하는 그 고됨과 힘듦을 조금 더 헤아릴 수 있다. 몇 개월간 프로젝트 때문에 퇴근하고도 일에 매여 있어 아내에게 미안했기에, 첫째 아이 방학 후 포항에 내려가는 게 오히려 안심이 됐다.



아버님 어머님 집에서 아내는 물론 여전히 피곤한 기색이 있었지만 더 자주 웃었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또 같이 포항에 사는 처형도 수시로 아버님 어머님 집에 와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활력소가 되었을 거다.



아내에게 어머니가 있고 언니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남편인 나와는 또 다른 결의 대화를 아내는 이들과 나눈다. 다른 색깔의 친밀함과 애정이 어머니와 처형에게 깃들어 있다.



아이를 어머님과 나에게 잠시 맡기고 처형과 둘이 집 앞에 꼬막짬뽕을 먹고 오겠다고 나간 아내. 그런데 마침 가게 문이 닫아서 결국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만 먹고 왔다며 아쉬워했지만, 아기를 맡기고 잠시 언니와 바람을 쐬러 나갔다 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언니, 아직 안 자나요

나 잠이 안 오네요

나랑 얘기 좀 할래요

그냥 얘기 좀 들어줘요.


나 요즘 좀 그래요

많이 아프고 그래요.

나 주저앉을 것 같아

다신 못 일어날 것 같아


내가 믿었던 것들이

내가 알았던 것들이

다 틀린 것 같아요

사랑 같은 건 더 모르겠고요.


쓰러지는 담벼락 등으로

밀며 버티고 있는 삶

앞은 보이지도 않는

날들만 영원할 것 같아.

초라하고 쓸모없는 사람.



사과같이 어여쁜 내 친구야

아, 어쩌면 좋을까

나도 아직 세상이 어려워

매일 아무것도 몰라


우리 날씨가 좋은 날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저기 골목 끝 식당에

창가 자리가 참 좋더라.


네가 좋아하는 것 먹자

멍든 마음은 밝은데 내어놓고

작은 공원도 갔다가

커피 단것도 빠지면 섭섭하지.


넌 참말 괜찮은 사람

오늘도 잘 살아낸 것 알아

우리 같이 기운 좀 내보자

오늘 전화 참 고마워.

그리고 이 밤 곤한 잠 이루길.


_ 정밀아 <언니> 중



이 노래를 들으며 자매애란 이런 것일까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됐다. 아내는 자신에게 언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언니는 자신에게 소울 프렌드라고 얘기한다. 그만큼 각별하고 특별한 관계란 의미일테다. 뭐, 어머님에게 느끼는 정과 사랑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일 터. 온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머니나 언니가 있는 것만으로도 육아로 인해 소진되는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남편인 내가 일차적으로 그 역할을 감당해야겠지만 말이다. 아내에게 있어 어머님과 처형의 존재, 그 소중함과 특별함을 다시 한 번 체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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