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통에서 잠깐 시선을 돌려 보니

아내와 대화 후 깨달은 것

by 김이안



작심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요즘 뭐가 그리 못마땅해?"


그녀가 답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올라와. 지금 그나마 많이 참는 거야"



아내는 지난 3월 나의 퇴사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얄밉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내년 4월 목회자 안수를 받는 거였다. 아내는 이게 우리 가정의 중요한 퀘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나의 미션 클리어 같은.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아까운 결정이 맞기는 하다. 학부 4년, 대학원 2년 반, 인턴 시험 통과, 이제 마지막 1년을 앞두고 그만두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이번 퇴사는 아예 목회와 교회 사역이라는 길을 벗어난다는 의미의 퇴사였다.

아내와 결혼하고 2년 후쯤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아내는 분명히 내가 목회자로의 소명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사실 당시 상황 자체가 대학원에 입학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긴 했다. 그렇기에 나도 목회자가 되는 것이 나의 길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1년을 앞두고 길을 벗어났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담임목사님의 다혈질적인 분노 분출을 감당하는 데 한계가 온 것이었다. 마음과 몸이 더 이상은 안된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이러다 자의식이라는 게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억지로 더 있다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결심이 들었다.





아내에게 이 점을 다시 얘기했다. 나는 죽다가 살아 돌아온 것이라고. 자칫 잘못하면 정신에 심각한 내상을 입을 뻔했다고 말했다. 물론 아내가 충분히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퇴사 통보를 조금 미리 하긴 했다. 이에 대해선 다시 사과를 했다. 2월이 교역자들이 이동을 주로 하는 마지막 시기여서 후임자를 구하기 위해 빨리 통보를 해야 할 상황이긴 했다. 아내는 아직 이 서운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스트레스와 심각한 상태애 대해서도 이해는 하지만 본인 역시도 그런 정신적인 죽음 가까이에 간 스트레스 상황을 겪었기에 내가 좀 얄밉다고 했다.


'얄밉다?'


아내는 10년 차 직장인이다. 조직 자체가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런저런 압박을 많이 근무환경에 있다. 그동안 정말 안 좋은 근무지에서는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숱하게 울면서 운전을 했고, 스트레스로 인해 손이 덜덜 떨리고 손목 부위에 알 수 없는 가려움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즉 몸에 명확한 반응이 나타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그때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정의 주 수입원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냥 나는 죽었다 생각하고 힘든 문턱을 몇 번 넘고 넘어 내가 안수를 받을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거다. 그래서 자신은 그만두지 못하고 이때껏 버텨왔는데 이제 딱 1년을 앞두고 그 길에서 뛰쳐나온 내가 밉고 서운하고 또 밉다고 했다. 마음 한 켠으론 내 심정을 이해하더라도 불쑥불쑥 화가 나고 배신감까지 느꼈다고 얘기했다.






그때 문득 아내가 받았던 그 스트레스와 내상의 깊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도 아내가 어떨 때는 아침에 출근하는 게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죽으러 가는 것 같아서 힘들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또 직장에서 상급자 때문에 숨이 턱 막히고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저 '많이 힘들구나' 정도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내가 그와 비슷한 상태를 경험하고 난 뒤에, 아내에게 다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 깊숙하게 아내를 뚫고 지나갔던 고통이 마음속에서 느껴졌다. 나로 인해 느끼는 아내의 그 복합적인 감정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안쓰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속 깊숙한 데서 올라왔다.



"그때 진짜 힘들었던 거였구나. 겪어보니까 알겠네. 미안하다"



"그래, 직장 생활하면 3년차 때쯤 위기가 와. 자기는 그 위기를 못 버티고 나온거라고. 서운하게 생각해도 할 수 없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 나는 그냥 없다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버티는 거야. 그러다가 한 고비 또 넘기는 거라구"



아내의 이 말에 다시 어느 부분에 대해 대꾸를 할까 하다가 그냥 개를 끄덕였다. 내게 온 고통이 커서 그 고통을 넘기는 데만 집중하다가 아내가 겪었을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운함보다 미안함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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