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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9. 2020

딸과 아들을 평등하게 키우기

  부모님은 오빠와 나를 평등하게 키우셨다. 오빠가 사내아이라 후한 대접이나 경제적 지원을 더 받았다거나 내가 여자라 집안일을 많이 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은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조차도 어렸던 오빠와 나에게 항상 같은 금액의 용돈을 주셨고, 성별을 이유로 내 마음이 상할 만한 차별 대우를 하신 적이 없었다. 당신들이 지나오신 서러운 세월을 딸이고, 손녀인 나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짐작한다. 여중·여고를 다녔고, 여초 사회에서 대학·직장생활을 했다. 따지고 보면 집 안팎에서 남녀차별을 실감할 만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은 채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셈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페미니즘을 화두로 남녀가 대립구도의 절정에 다다른 것만 같았던 2019년, 주변 사람들과 남녀 차별과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내 또래 여성들 중에도 집안 분위기에 따라 작중 김지영과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가정에서의 차별과 직장에서의 경험들을 공유하며 '82학번이 아니라 82년생인데 그건 과장이다, 소설에 불과하다' 치부했던 내 생각을 돌아볼 수 있었다.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무지였고, 타인의 그늘에 눈 가린 채 누린 평안이었다. 물론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일부의 체험이며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양성평등이란 성별과 무관하게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사전적 의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양성평등에 동의하는 한 여성이, 엄마로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태도를 견지했는지는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남편에게는 동등한 가사분담과 육아 참여를 요구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남녀는 평등하다고 말했지만, 의도적으로 딸에게는 이태영이나 헬렌 켈러처럼 진취적이며 눈부신 업적을 이룬 여성들의 삶을 더 많이 보여주었고, 설거지나 빨래 정리와 같은 집안일은 전혀 시키지 않았다. 독립이든 결혼이든 언젠가 가사노동이 본인 몫이 되는 순간이 올 텐데 미리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과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많이 짊어지고 있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불만이 내포된 행동이었다. 아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러 분리수거를 함께 하고, 설거지나 청소기 돌리는 일을 맡겼다(먼저 시킨 적은 없지만 하겠다면 기꺼이 내어 주었다). 양성평등 의식을 가진 남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일에 동참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의 더 많은 말과 행동에 모순이 드러났을 것이다. 아직은 어리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역차별이라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라고 믿는다.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과 기간을 고려한다면 당연 가정의 비중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성평등, 성역할과 관련된 평소 우리 부부의 말과 행동은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어 아이들 생각의 바탕을 만들게 된다. 나의 말과 행동의 모순된 태도가 아이들에게 혼란이나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참 난감할 것 같다.     



  아이들은 빨리 큰다. 곧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사춘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남녀의 뚜렷한 신체적인 차이를 본인의 몸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신체적인 차이가 능력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어떤 상황에서도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지지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진정한 성평등 의식을 가진,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성인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면 나의 일상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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