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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2. 2020

거북이는 알고 있었던 걸까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언제 이 문장을 처음 들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중고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이었거나, 독서평설 같은 잡지의 쉬어가는 페이지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천천히 가도 꾸준하다면 경주에 이길 수 있다는 뻔한 이야기지만 살면서 저 문구를 실감할 만한 순간은 없었다. 내가 토끼 입장의 능력자라 거북이를 이해할만한 경험을 하지 못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범사에 중상 정도에 낄 수 있는 능력치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꾸준함이다. 과거의 나는 거북이와 같은 답답할 정도의 꾸준함이 없었던 탓에 상대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경쟁 상대는 옆자리 아이가 아니라 놀고 싶고 자고 싶은 나 자신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나도, 아마 당신도. 학원만 등록하고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때려치우기를 반복했던 영어 공부가 그랬고, 셀 수 없이 도전했지만 15년째 제자리인 다이어트도 그랬다. 이 나이에 그 정도면 괜찮다는 정신승리도 승리라면 수확이겠지만.       



  사실 시작만 해 본 일은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도자기 공방, 요가, 종이접기 자격증 과정, 수영, 메이크업 강좌, 인문학 강의 등등. 등록 후 출석은 두세 번에 그쳤던 것도 부지기수였음이 부끄럽다.


                    

  이런 시작의 역사를 가진 내가 꾸준함으로 결국 해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경험 혹은 성취가 아니라 목격인 것은 내가 직접 한 것이 아니고 아이의 성공 과정을 지켜만 보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아이에게 줄넘기를 가르치면서였다. 한국에서는 학교나 태권도장에서 자연스럽게 줄넘기를 배울 기회가 있지만 해외 체류 중이라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직접 가르쳐야 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줄넘기는 팔로 줄을 돌리면서 박자에 맞추어 점프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동작의 반복이다. 그러나 8 아이에게  동시 동작은 영어 작문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뭐든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양발 뛰기  개를 성공하기까지 두세  눈물을 보였다. 함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아이를 어르고 달래 매일 한갓진 아파트 공터를 찾아 격려했지만 사실상 내가   있는 도움은  뿐이었다. 머리와 몸의 협응은 동작의 반복을 통해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니  박으로 뛰는 아이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연습한 끝에 아이는 자기 리듬에 맞춰 뛰기 시작했고,  개의 성공은 며칠 지나지 않아 2,30개로 이어졌다.

신난 아이는 100, 200, 300 연속하기라는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연습했다. 딸아이가 양발 뛰기 500개를 성공하고 팔짝팔짝 뛰던 ,  가슴도 함께 벅차올랐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도 있었지만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계속하면 진짜 된다는 것을 목도한 감격도 컸다. “   넘어서 울었던  기억나?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라는  들어봤지? 너를 보면서 엄마는  문장을 진짜로 이해하게 됐어.”   


        

  양발 뛰기가 가뿐해지자 아이는 가위 뛰기, 뒤로 넘기를 연습했고 마지막으로 2단 뛰기에 도전했는데 이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반복해서 보았던 유튜브도 어느 순간부터는 소용이 없었다. 어찌어찌 한 개는 성공하는데 줄을 넘는 순간 자꾸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1단 뛰기도 100개를 겨우 넘는 처지라 앉지 말고 발을 앞으로 뻗어보라는 유튜버의 설명만 되풀이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바로 어제, 놀이터에 나간 아이가 마스크도 벗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 “엄마, 나 2단 뛰기 3개 성공했어. 드디어 했어!”     


                

  나에게도 분명 처음으로 양발 뛰기를 하고, 10개, 100개 넘기에 성공하던 날이 있었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운동신경으로 보건대 쉽게 성공했을 리 만무하다. 줄넘기뿐만 아니라 시간을 들여 연습으로 터득한 기능들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꾸준히 하면 해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관찰자가 되어서야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steady라는 단어를 곱씹게 만든 것은 고작 줄넘기였다. 그러나 딸의 줄넘기는 꾸준함의 힘이 사실은 모든 도전과 성취에 적용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수없이 변주되는 TV 속 누군가가 맞이한 영광의 순간과 숱하게 시작만 하다 끝난 내 실패의 시간들이 대비되는 지점에, 결국 비밀은 꾸준함이었다는 간단하여 허탈한 결론이 남았다.     


                      

  우리는 다시 도전하게 될 테고 또 벽에 부딪히는 순간을 맞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아이들에게 다시 일러주고 싶다. “아무래도 거북이는 알고 있었던 거 같아. 토끼와의 내기였지만 결국 넘어서야 하는 상대는 자기 자신이라는 걸 말이야. 사실 살면서 반드시 토끼를 이겨야만 하는 경주는 많지 않거든.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서 언덕에 오르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 나를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수많은 토끼들을 보면서 좌절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면 언젠가는 언덕에 오르게 된다는 거, 거북이의 비밀을 잊어버리지 마.”      


                    

  참, 나에게는 딸보다 2살 어린 아들이 있다. 막 양발 뛰기를 성공한, 2단 뛰기 성공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딸 옆에서 부러움의 눈물을 글썽이는. 이번에는 아들에게 꾸준함의 마법을 경험하게 해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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