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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3. 2020

5년째 뚜벅이입니다.

   눈이 옵니다. 펑펑 내리니 보는 재미가 있어요. 소복소복 쌓이는 게 너무 예뻐서 아침을 먹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가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눈 오는 날을 오래 기다렸거든요. 날씨가 추워지니 자꾸 묻습니다. 오늘 비 온대? 응 웬 비? 비 와야 눈이 오는 거잖아. 날씨가 추우면 비가 얼어붙어 눈이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나 봅니다. 따뜻한 나라에 몇 년을 머물다 온 탓에 우리 모두 얼마 만에 눈 구경인지 모릅니다.  


    

  오랜만이라는 것 말고, 눈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출근길 걱정이 없기 때문이지요. 일을 쉬고 있거든요. 내일이 올 들어 제일 추운 날이라는데, 눈은 더 온다는데, 빙판길이 되면 대체 몇 시에 나가야 하는 걸까. 도로 사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펑펑 오는 눈이 더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운전을 못합니다. 면허가 없는 것은 아니고요. 연수를 세 번이나 받았지만 결국 미니 쿠퍼를 몰고야 말겠다는 꿈은 접어야 했습니다. 남편은 아직 귀국 전이라 장롱면허 10년 차인 저와 아이들은 차 없이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차 없이 살아가는 생활이 어떨지 상상이 되시나요? 


    

  아이들 학교는 10분 거리고, 장은 주로 인터넷으로 보니 큰 불편은 없습니다. 다만 한 번씩 외출을 할 때 번거롭기는 해요. 일전에 창덕궁에 다녀왔던 날을 떠올려 보자면요.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 앞에 내려 3호선을 탑니다. 안국역 근처인 창덕궁에서 후원 투어를 하고 다시 지하철에 앉아 지났던 역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돌아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니 드디어 아파트가 보입니다. 사실 성인이 걷기에도 조금 피곤한 일정이었어요. 제가 늘 그렇게 자비롭지 못한 엄마는 아니고요. 창덕궁에서 집까지 택시 타는 비용으로 기념품을 사고 싶다는 아이들의 제안을 들어주었을 뿐이랍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대중교통 이용은 저희 가족이 외국에서 차 없는 생활을 몇 년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집에 운전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요. 처음 차 없는 일상을 시작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오죽하면 아이들이 외출을 거부하며 피자고 파스타고 집에 있을 테니 엄마 아빠만 먹고 오라고 하기도 했어요. 밖에 나가면 습기와 더위에 지치고,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사람은 적응하는 존재라더니 뚜벅이 생활 5년 만에 이제는 택시비를 아끼고 걷겠다는 말을 듣게 되었네요. 물론 아이들이 전보다는 자라기도 했고요.     



  아이들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 많은 버스 안, 셋이서 두 자리에 앉으려면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혀야 했어요. 오랜만에 다 큰 아이를 무릎에 안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생겼지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나란히 보면서 한 강이 얼마나 넓은지, 다리는 몇 개나 있을지 내기도 하고요. 오며 가며 남산과 롯데타워도 눈에 익혔어요.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석과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어른들한테 자리를 양보받으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해 볼 기회도 가졌어요. 생면부지 타인의 대가 없는 배려는 흔히 경험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잖아요.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면서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온 몸으로 느끼는 건 덤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지는 아이들 덕분에 호젓하게 여유를 즐길 시간이 길어지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는 건 비밀입니다.     


   

  물론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몸이 힘들어요. 특히나 코로나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이 편하지 않은 시기니 마음껏 외출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퇴근 시간의 인파를 피하려면 어딜 가든 일찍 돌아와야 했어요. 그래서 경복궁 야간개장도 아쉽지만 가지 못했고요. 엄마인 제가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외출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네요. 바람 쐬러 나갈까, 휙 다녀 오자와 같은 과감한 발언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남편은 귀국하면 차부터 사려 하겠지요. 집 앞에서 목적지까지 차를 타는 생활에 익숙해지면 아이들과 하는 뚜벅이 서울여행은 힘들어질 겁니다. 안전벨트 매는 법을 모르는 어리숙한 아이들을 보며 웃는 것도요.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려요. 오늘은 마음껏 눈 내리는 창밖을 즐겨보렵니다. 내키면 오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눈싸움도 한 판 해보고요. 최강 한파에 빙판길 사고는 없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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