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홍승주 Jun 02. 2021

나는 어떠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삶의 형태






삶에도 취향이 있다. 누군가는 일은 적당히만 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며 살길 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본인의 여유와 취미를 포기하더라도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며 성취를 이루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면 그만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너무 일관된 정답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답만을 성공이라 규정한다.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하고, 명문대학교에 입학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여 아기를 낳고 잘 사는 것이 성공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나는 의과대학을 다니며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정작 본인은 다른 일이 하고 싶은데 책상머리 앞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있으니, 공부가 잘 될 리 없고 행복할 리도 없다. 마찬가지로 떠밀려서 한 결혼이 인생의 재앙이 된 사람들도 많다. 결국 중요한 건 본인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사는 일인데, 이 간단한 사실을 우리 대다수는 모른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숨기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는 너무도 병적이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우리들의 바짓자락을 잡아끈다. 어느날 덜컥 치료할 수 없는 암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이러한 질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던져보면 열에 아홉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채우다가 죽겠다고 말한다. 허나 실제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은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 한 채 죽기 직전까지 항암제를 퍼붓다가 죽고 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의사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앞으로 포기할 수 있는 것들과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그래도 이것만은 꼭 지키며 살고 싶다, 그런 게 있을까요? 가령 나는 아이스크림은 일주일에 한 번 꼭 먹고 싶다던지, 산책을 하고 싶다던지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의사는 거의 없다. 배운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것이 중요한 의학적 문제라는 인식이 없어서이기도 하며, 인식이 있다고 한들 현행 의료보험 제도하에서는 그렇게 느긋이 진료를 보다간 망하기 딱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대두된 개념이 호스피스 완화의료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단순히 공격적인 의학적 처치를 중단하자는 개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끝까지 자아를 지키며 본인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는 훌륭한 뜻을 지닌 선생님들이 많아 그래도 상황을 바꿔보자 노력한 사례가 제법 있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중년의 남성으로 암이 온 몸에 전이되어 더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분이었는데, 이미 더이상 치료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다.

   "내가 마! 이까짓거, 어! 별 거 없다! 괜찮다!"

부인으로부터 얘기를 듣자 하니 당신께서는 원래부터 허세가 심하여서 만사에 늘 이런 식으로 살아오셨다고 하는 것이다. 의료진은 고민에 휩싸였다. 교과서대로의 호스피스라면 죽음을 수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차분히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치료는 효과가 없다는 것도, 이 상태로라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이 워낙 유별난 것이었다.

   "마, 괜찮다! 별로 안 아프다! 암도 별 거 없네!"

결국 의료진은 상의 끝에 환자가 가진 삶의 태도를 최대한 존중해 주기로 했고, 환자는 허세를 잘 받아주는 의료진과 가족들 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괜찮다, 마'하다 돌아가셨다.


보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다. 네다섯 살 정도 되는 어린 여자 아이였는데 백혈병으로 인해 더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의학적인 처치야 최대한 통증을 줄여가며 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한테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는 언젠가 동화책을 읽으며 사람이 죽으면 유니콘을 타고 하늘로 간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도, 이렇게 눈을 감으면 영영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없을 거란 사실도 전혀 알지 못하였다. 고민하던 호스피스팀은 아이가 바라보고 있는 그 세상 속에서 죽음을 받아드리도록 하는 게 옳은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의료진들은 아이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잘 지켜주고자 노력하였고, 덕분에 아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해하지 않고 '먼저 유니콘을 타고 놀고 있을 테니까 엄마 아빠도 바로 오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


어떠한 삶을 사는가에는 정답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우리가 병들고 약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병들고 약해지면 새로운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하여.

이전 07화 우리 병원에는 맹꽁이들이 많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의과대학 실습서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