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승주 Sep 11. 2021

입을 꾹 닫아버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

작고 어린 것들은 모두 다 사랑스럽다. 제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길가에 누워 뒹굴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보면 걸음을 멈추기 마련이다. 흔히 이를 두고 새끼들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외모를 가지도록 진화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베이비 스키마’라고 한다. 실제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포유류 동물의 새끼들은 둥근 얼굴에 낮고 오목조목한 코, 그리고 통통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대중들이 사랑하는 미키마우스, 뽀로로,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들 또한 그러한 모습이다. 하지만 쉽게 말해 ‘진화했다’는 것이지 이는 결국 귀엽지 않은 아기들은 모두 부모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즉 자연선택되었다는 뜻이므로 이러한 설명에는 과학과는 별개로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측면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든 아기들에게 보호본능을 느낀다는 설명은 ‘개체 선택’이 아닌 ‘종 선택’을 말하고 있는 듯하여 진화론적으로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1] 이렇게 생각해보면 진화론은 차치하고 그저 작고 어린 것들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나에게는 조카가 셋이나 있다. 가뜩이나 작고 어린 것들은 사랑스러운데, 그 작고 어린 게 나의 조카라면 오죽하겠는가. 조카들이 태어나고 한동안 내 휴대폰 앨범에는 조카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사랑스러운 건 외형뿐만이 아니다. 아기들의 언어 능력이 발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 순수함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우리들의 사고를 제한하는 여러 진리와 법칙들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바라본 세상. 그 세상을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한번은 나의 조카 중 하나가 아침에도 희끗희끗하게 떠있는 달을 보고 ‘달껍질이 떠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햇님은 아침에만 나타나고 달님은 밤에만 나타나는 것인데, 이른 아침에 달님이 어렴풋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자러가면서 남겨둔 껍질만 두둥실 떠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귤껍질도 아니고 달껍질이라니. 조카의 사랑스러운 표현을 들은 나는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랑스러운 모습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소아 정신과 실습을 돌며 외래 진료에 참관하던 중, 한 어머니가 두세 살짜리 아기를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 의자에 앉은 아이의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교수님께 말했다.

   “아이가 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교수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그동안 아이가 어떻게 커왔는지에 대해 물었다. 답변을 듣는 와중에도 교수님의 눈은 시종일관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진료실에서 엄마의 품을 떠난 아이는 진료실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진료실에 놓여있는 장난감들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아이가 갑자기 엄마의 손을 잡고는 장난감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갔다. 순간 교수님의 표정이 변했다.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눈을 통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가장 흔하게는 눈맞춤이 잘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관심을 보이는 사물에 대해 시선을 통해 ‘나는 저게 관심이 있어. 너도 저걸 봐 줄래?’와 같은 메세지를 던질 수 없다. 이와 같이 눈을 통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엄마의 손을 끌고 가서 장난감에 갖다 대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후 어머니의 말을 들은 교수님은 찬찬히 답했다.

   “아이가 발달이 조금 느린 것 같기도 합니다. 단어의 갯수도 그렇고, 다른 의사소통 능력도 조금 뒤떨어지는 것 같고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어머니를 보고 교수님이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소아의 성장과 발달은 한 번만 보고 진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발달을 따라잡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앞으로 외래 진료를 보면서 조금 더 추적 관찰하였으면 합니다.”

정확한 사실이면서도 아이의 어머니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불확실함을 감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부모 몇이나 되겠는가. 교수님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다시 되물었다.

   “혹시 저희 아이가... 자폐인가요?”

교수님은 잠깐 머뭇하다가 담담하게 답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순간 진료실의 공기가 변했다. 이후의 진료는 그렇게 탁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입을 꾹 닫아버린 아이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 또 얼마나 새로운 모습일까. 비록 그 모습을 예쁜 말로 전할 순 없지만 그 아이들이 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보다도 훨씬 더 원초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


[1] 진화는 자연선택을 통해 발생한다. 쉽게 말해 기린은 높은 나무에 있는 열매를 먹기 위해 목을 계속 뻗다 보니 목이 길어지도록 진화를 한 게 아니라 애초에 목 길이가 다양한 기린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 목이 긴 기린만 살아남아, 즉 자연에 의해 선택됨으로써 진화한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시각에 따르면 이러한 자연선택은 ‘개체’ 수준에서 발생한다. 각 개체들이 모두 치열하게 경쟁하고 선택됨으로써 진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종'을 위한 무조건적인 양보와 선의는 없다. 모두가 각 ‘개체’의 입장에서 유전자를 물려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행위일 뿐. 가끔은 이타주의를 설명하면서 ‘종’ 수준에서, 즉 종의 번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종 선택’이 이야기되기도 하였지만, 종 선택은 여러 이유에 의해 거의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진화생물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윌슨이 일평생의 신념을 뒤바꾸어 다시 종 선택을 주장하기도 하여 자연선택이 일어나는 집단의 크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은 상황이다.



이전 24화 오늘도 이 병원은 그런 하루였구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