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동몽
차가운 공기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삐져나오는 지난주 어떤 날이었다. 본과 2학년의 연구 기간에 시간이 조금 나서 다시 봉사활동을 시작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암병동을 구석구석 기웃거리며 어디 도울 일이 없나 찾아보고 있었다.
병동을 둘러보던 중 마침 40대 남성 췌장암 환자분께서 체위 변경을 원하셔서 함께 있던 봉사자 선생님과 함께 환자분의 몸을 들어 자세를 변경해 드렸다. 침상에 오래 누워있는 환자의 경우, 신체의 한 부위에만 압력이 가해져서 욕창이 생기기가 쉬운데, 욕창이 생기면 통증뿐만 아니라 악취도 나고 자칫하면 심각한 감염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환자가 누워있는 자세를 변경시켜주는 일이 중요한데, 다 큰 성인을 보호자 혼자서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체위 변경은 우리 봉사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이 날도 환자의 어머니가 혼자서 환자의 자세를 바꾸려다가 도무지 스스로 힘으로는 잘 되지 않아 우리를 찾으신 것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첫 진단 때와 달리 크게 나빠지지 않고 이만큼 살고 있는 게 어디에요."
"이러다가 곧 나을지도 모르지요. 하하"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내면의 깊은 이야기까지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환자와 보호자는 밝은 표정과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 '대단한 분들이네'하는 생각을 심어주는 분들이었다.
"자, 다 됐습니다. 뭐 더 필요한 것은 없을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금요일에는 차 봉사도 해서요. 환자분은 금식이시고... 괜찮으시면 어머니라도 차 한 잔 가져다 드릴까요?"
종이컵에 유자청 한 숟갈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 따라 만든 조촐한 차 한 잔일 뿐인데 보호자께서는 "이것만 해도 큰 신세를 졌는데, 무슨 차에요"라며 손사래 치고 거절하셨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큰 일 아니니 한 잔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였고, 환자분께서도 "그래요, 어머니. 차 한 잔 드시고 좀 쉬고 오셔요"하고 권유하기에 어머니는 마지 못해 그러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차를 나누어 드리는 곳으로 가고, 다른 봉사자 선생님께서는 환자 곁에서 병상을 지키게 되었다.
어머니와 걸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멀쩡하던 아드님이 어느날 갑자기 턱 하고는 췌장암에 걸렸더라는 것. 가뜩이나 장가도 가지 않아 속상한데 몸까지 좋지 않아 마음이 편찮으시다는 것. 2년간 직접 간호를 도맡아 하시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다는 것. 기약없고 지원이 없는 간호는 '사회적 질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순간이었다.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어머니."
"2년 전부터 '나'는 없어졌죠 뭐. 처음에는 사랑으로 돌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힘도 없고, 사랑도 없고, 피폐함만 남았어요."
그래도 힘내셔야지 않겠냐며 실없는 위로로 상황을 잘 마무리하였지만, 사랑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어머니의 솔직한 대답은 차를 가지고 오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시 병상으로 돌아오니 환자분이 봉사자 선생님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계셨다.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를 다시 환자분 곁으로 모셔다 드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라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봉사자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아까 그 환자가 그러더라고. 불법인 건 알지만 혹시 그냥 먹으면 조용히 죽게 되는 그런 약이 없느냐고."
힘들구나. 환자와 보호자 모두.
삶에 대한 집착도,
아들에 대한 사랑도 모두 날아가버리고,
하루 하루를 그저 그래야 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계신 두 분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서로 내색하지 않고,
그늘진 병상을 애써 밝은 웃음과 긍정적인 생각들로 채우며,
기울고 있는 하루하루를 그저 간신히 붙들고
필사적으로 서 있는 것이었구나.
병듦과 죽음에 대한 인본주의적 투쟁.
내가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이나 던지며 걷던 이 곳,
오늘도 이 병원은 그런 하루였구나.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 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은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고은, 『순간의 꽃』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