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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May 09. 2021

우리 병원에는 이런 울음만 있었으면 좋겠다

울음

병원은 울음이 많은 곳이다. 무슨 영문인지 병원 한 구석에 주저앉아 처절하게 울던 환자분, 아이의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엉엉 울던 어머니,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환자와 보호자를 면담한 뒤 한껏 억눌러왔던 눈물을 소맷단으로 훔치며 병동에서 나오던 주치의 선생님, 교수님의 외래 진료를 참관하던 중 이제는 치료를 하는 것보다 통증을 관리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더 의미있는 시간일 것이라고 환자를 설득하는 교수님을 지켜보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만 실습생 동기까지. 몸이 아픈 건 환자 혼자겠지만 마음이 아픈 건 비단 환자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제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누군가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덩달아 마음이 동요되기 마련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과 실습을 하던 중 계속하여 타이밍이 맞지 않아 환자에게 해야 할 중요한 신체 진찰을 하지 못하여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고서 제출 전날 겨우 환자를 만났는데 어떤 연유였는지 환자는 푸석한 얼굴을 적시며 울고 있었고, 마음이 무거워진 나는 그냥 ‘이제 병동을 옮기게 되어 뵙지 못하니 잘 지내시라 인사하려고 왔다’고 말한 뒤 신체 진찰을 하지 않고 황급히 병동을 빠져나왔다. 내겐 제법 중요한 보고서였지만 애처롭게 울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체 진찰은 커녕 빨리 인사를 하고 나가자는 마음 뿐이었다.


반면 반가운 울음도 있다. 산부인과 실습 도중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아기가 태어나는 걸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출산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따뜻했던 교수님들도 분만장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경우도 많다. 수술이 시작되면 기대감과 긴장감이 섞인 묘한 분위기 속에서 산모의 배가 열리고, 곧이어 양막이 터지면서 양수가 물을 뿜듯 뿜어져 나온다. 의료진들은 아기를 꺼내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고, 교수님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조심스럽게 아기를 산모의 뱃속에서 꺼낸다. 아기가 나온 후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 아기가 쩌렁쩌렁하게 울면 그제야 따스한 축복감이 분만장을 가득 채워 긴장감을 압도해버린다. 나는 아빠도 아니고 산모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아가의 반가운 울음 소리를 듣자마자 눈가가 촉촉해져 남들이 보기 전에 얼른 눈가를 훔치느라 애썼다.


또 다시 생명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유전자의 신비로운 영속성.

한 세대 동안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과, 사랑과, 때로는 슬픔들을 경험해나갈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 그 찬란한 축복을 알리는 울음소리.


우리 병원에는 이런 울음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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