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야기는 현재(지구에서)와 과거(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됩니다.
[달]
어둑한 터널 길목은 끝자락으로 갈수록 굽이쳐 있었다.
고래상어의 입 안을 본떠서 만들어진 고리 모양의 터널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져, 마치 거대한 괴물의 갈비뼈를 연상시키는 흰색의 타원형 조명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서브루나 기지 안에서 비상 탈출용 우주선들을 이동시킬 때 쓰이는 장소였지만, 대부분 대량의 물건이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힘겹게 내리막을 걸었다. 우주복을 입고 있을 때면 늘 기대가 앞서는 바람에 걸음조차 제대로 딛기 힘들었다. 달에서의 ‘야외’ 활동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과 비슷했다. 욕심만큼이나 호기심도 줄여야 했고, 발도 허락된 만큼만 앞으로 뻗는 게 현명했다.
터널 내부를 따라 둘러진 수많은 빛 고리들 중 오직 두 개만 초록색 빛을 밝히고 있었다. 하나는 완만한 오르막을 걸어올라 두 개의 녹색 빛줄기 사이로 들어갔다. 길고 좁은 컨베이어 벨트가 기지의 바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숨을 짧게 뱉고는 양쪽 손잡이를 잡았다. 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라 할지라도 높이의 두려움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래에 혹이 있는 것처럼 컨베이어 벨트는 몇 미터마다 출렁이며 흘러갔다. 헬멧 바이저 유리에서 그녀의 심박수 색깔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손바닥과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제법 다 자란 나무가 뿌리까지 통째로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의 파이프와, 겉에 연결된 수 백개의 튜브 다발들, 그리고 고급 초콜릿처럼 보이는 금색 구체의 수소 탱크가 발아래로 지나갔다. 마침내 컨베이어 벨트는 기지의 지붕에 다다라 한 번의 덜컹이는 흔들림과 함께 멈추었다.
하나는 두 팔을 앞으로 힘껏 던지며 건너편으로 가볍게 뛰었다.
뒤를 돌면 인공의 빛이 닿지 않는 용암 동굴은 심연에 잠겨 있었다. 하늘은 글자 그대로 무한하게 드높았다. 검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긴장감은 아무리 많은 단어와 표현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갑판의 저 멀리서 성가신 녹색 조명들이 달의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등대처럼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나는 익숙한 시설이나 풍경들을 난생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다시 보는데 서두르지 않으려 했다. 1분마다 핥아야 하는 사탕처럼 달에서의 휴일을 즐기고 싶었다.
널찍한 정사각형 모양의 이착륙장은 다른 곳과 확연히 구분이 되어 있었다. 위로 갈수록 얇아지는 뿔 형태의 지주 하나가 맨 위에 얇은 케이블 두 가닥을 고정하고 있었다. 꽤나 유연하고 가벼워 보이는 줄은 멈춘 상태였고, 동굴의 벽을 따라 달의 표면층 입구까지 수 킬로미터를 이어져 있었다.
그녀가 탑승 권한을 인증하려 입력판에 (오이 크기 만한)손가락을 가져갔을 때 지주 꼭대기에 달린 커다란 도르래가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이 민첩하게 움직이며 바닥에 진동을 일으켰다. 헬멧 안까지 흘러들어온 둔하고 낮은 울림은 마치 산등성이 너머에서 전진을 하는 기마군단을 연상시켰다. 반짝이는 은빛 캡슐 한 개가 동굴의 둥근 벽면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로 뉘인 달걀의 형체였고, 광택이 흐르는 은색 지붕은 거울처럼 수많은 곳에서 비추는 조명들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캡슐의 얇은 미닫이문이 악어의 눈처럼 열렸다. 그 순간 하나는 갑자기 얼음처럼 굳어 앞으로 발을 내밀 수 없었다. 그녀는 휑하게 뜬 눈으로 열린 문만 바라보았고, 가슴팍과 허벅지에 달린 다용도 주머니들을 전부 더듬었다. 그녀는 짧은 탄식을 뱉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맙소사.”
우주복에 동전만 한 구멍이 나서가 아니었다. 하나는 지구에서 가족들이 보내온 물품 주머니가(14년을 같이 살았던 집고양이 사진이 든 은목걸이, 할아버지 시계, 8살 생일 선물로 부모님께 받았던 곰돌이 인형.)이 침대 어딘가에 고스란히 올려져 있다는 걸 의심할 수 없었다. ‘개인용품 주머니’의 까다로운 허가 기준을 통과하는데 소요된 두어 달의 시간은 일부러 그녀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날짜에 맞춘 것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하나는 자책하듯 두 손으로 헬멧을 두드렸다. 그리고 왼쪽 손목에 부착된 기기를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디스플레이에 산소와 배터리의 양은 모두 충분하다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인 ‘거대한 벽’에 도착한 후 다시 기지로 귀환하는 시간과 거리를 고려하면, 주머니 한 개 때문에 방으로 되돌아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빠가 몹시 기대할 텐데...” 그녀는 다음 주를 기약하며 마지못해 캡슐에 발을 올렸다.
달걀 모양 캡슐은 거의 날아다니는 것처럼 동굴의 벽에 박힌 수십 개의 지주들을 지나쳤다. 벽에서 천장, 그리고 입구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하나는 투명한 창문에 표시된 고도계를 보았다. ‘-80m, -50m, -30m.’ 서브루나의 맨바닥부터 잰 높이였다. 그녀는 캡슐 창문 가까이로 걸어갔다. 서브루나 기지의 지붕에 적힌 숫자 ‘2241’는 각지고 큼지막한 흰색 글씨로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기지는 조그마한 장난감 마을이나, 인쇄 회로 기판의 뒷면 같아 보였다.
캡슐의 문이 소리 없이 옆으로 미끄러져 열렸다. 하나는 반질반질한 재질의 갑판 위로 힘차게 뛰어내렸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하늘은 검은색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햇빛 아래서 순백의 가루로 덮인 지평선은 빛을 내뿜는 듯했고, 멀지 않은 곳엔 설산처럼 생긴 언덕들이 있었다. 이상한 긴장감이 맴돌았고, 기이한 적막은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선명했다. 혼자서 처음 달 사막의 표면을 밟았던 날의 감정은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단독적으로 달 유영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든 지휘부가 제시한 절차를 따라야만 했다. 그녀는 같은 자리에 5분간 서있었다. 다행히, 인간으로서 눈앞에 버젓이 떠있는 ‘고향 행성’을 바라보는 시간은 오븐의 쿠키를 기다리는 것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그녀는 엄지를 세운채 헬멧 앞으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헬멧 바이저 가까이 가져왔다. 손가락 옆에 떠 있는 지구는 은색 비단에 떨어지는 푸른 구슬이었다. 지구에서 슈퍼문을 바라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랬다. 하나는 한쪽 눈을 감은 채 손가락 끝을 주시했다. 작은 손목 움직임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푸른 세계가 엄지 손가락 뒤로 가려졌다 보이길 반복했다. 28만 km보다 깊은 상상은 아주 집요하고, 더 갈망하게 만들었다. 마치 동화가 현실로 변하고, 마법이 모든 역사와 기억 사이를 훑고 지나간 순간이었다. 그녀는 결코 이러한 순간에 익숙해지길 원치 않았다.
하나는 갑자기 무거운 뭔가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뱅뱅 돌았다. 마침 헬멧 유리 안쪽 면에 비친 그래프는 차가운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훈련대로 두어 번 길게 숨을 내뱉었다. 입 주변이 얼어붙은 것처럼, 웃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왼 손목 피복을 두른 띠가 반복해서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작은 디스플레이에 그녀가 예약한 루나바이크 사진이 나타났다. 여행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손목을 둥글게 말고 있는 화면을 가볍게 누르자 짧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흰색 토끼 두 마리가 골이 깊은 돌그릇에 절구질을 했고, 간단한 정보들이 위에 펼쳐졌다.
‘UTC—04:47, SubLuna-2241, HANA LEE, Maximum allowable time: 8h, Enjoy the Ride.’
하나는 둥근언덕처럼 생긴 기계화 시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설의 뒤로는 수 십 개의 깃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달 자원에 적잖은 관심을 보인 나라들의 국기는 화살촉처럼 매달려 있었고, 칠흑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펄럭거리지 않았았고, 모두 한 방향으로 펼쳐진 부동산 광고 표지판들처럼 보였다. 그중 눈에 띄게 훨씬 커다란 두 개의 깃발이 뒤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자원연합 기를 의미하는 ‘IROLE’, 그리고 구역의 이름이 적힌 ‘Mare Nubium(구름의 바다)’이었다.
평평한 석단 위에 예약대로 검은색 큼지막한 바퀴를 달고 있는 루나바이크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보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거듭해서 왼 발이 앞으로 나오기 전에 오른발이 뒤로 움직였다. 마음은 벌써부터 눈을 의심케 하는 ‘거대한 벽’ 앞에 있었다. 급한 성미가 그녀를 만화 속 인물처럼 허공에서 헛발질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검은 철망으로 짜인 앞바퀴를 꾹꾹 밟으며 탄성을 확인했고, 바이크 옆에 함께 놓여있는 비상용 산소와 배터리들을 좌석 아래에 달린 은색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루나바이크 좌석에 올라 두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맞은 때의, 알맞은 자리에 있는 기분에 휩싸여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도 그녀는 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대담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바이크의 출력은 눈 깜짝할 새 최대치에 이르렀다. 카메라는 그녀의 옆구리에, 지도의 목표까지 설정된 최단거리, 그리고 루나바이크의 앞바퀴는 동쪽 땅을 향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하나야!”
“응, 나 여기 있어!”
“드론 로봇들이 한 도시에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건 난생처음 봐. 꼭 가로등처럼 어디에나 배치되어 있어!”
행정실 안을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친구의 목소리에, 하나는 발을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타오는 지구에서 10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과 초봄의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방금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예나야, 카메라를 켜!”
대답은 없었지만, 연결은 그대로였다. 이곳저곳에 마이크가 부딪히는 거친 소리와 함께 아시아의 다양한 언어들이 뒤엉킨 소리가 이어졌다.
“미안해,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걸 눌러서 실행하면... 됐다. 안녕!”
코가 빨개진 예나의 얼굴이 홀로그램 스크린 전체를 가득 채웠다. 별 모양의 반짝이는 스티커들이 은하수처럼 그녀의 이마부터 볼을 따라붙어 있었고, 눈화장은 백일홍처럼 강렬한 짙은 분홍색이었다.
“나는 지금 부산이야! 훌찬도 함께 왔어.” “하나, 오랜만이에요!”
훌찬이 그녀에게 통신 기기를 넘겨받았고,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났다. 그들의 입에서 새어 나는 김은 어두운 새벽이 얼마나 추운지 알려주는 지표였다. 하늘에서 뭔가가 끊임없이 터지는 폭발 소리들과 함께 곳곳에서 사람들의 함성이 끊이질 않았다. 하나는 그것이 안전이 확보된 도시에서 매일같이 열리는 축제라는 걸 알았지만, 덩달아 재미를 느끼긴 어려웠다.
“시끄러워서 미안해! 지금 해운대에 엄청나게 큰 불꽃놀이가 한창이라서. 울릉도는 어때? 그동안 잘 지냈어? 정말 궁금해!”
“여긴 별 문제없어! 재활원은 이번 주말에...”
“알아! 우리도 곧 만나게 될 거야.”
하나는 입을 다물었고, 웃음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예나의 모습은 다시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이내 초점을 잃었고, 남자의 갈색 가죽 신발과, 탐스러운 흰색 털이 북실북실한 외투 사이를 반복해서 드러냈다. 하나는 어딜 보고 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칠 줄 모르는 환호성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연실 폭죽이 터지는 소리는 마치 수백 명의 북 연주자가 광장에서 땀 묻은 스틱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예나가 소리쳤다.
잠시동안 홀로그램 화면은 신호의 문제로 멈춰 있었다.
“뭐라고?”
하나는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문이 철컥 잠기는 소리와 함께 맹렬했던 소음은 죽은 듯이 사라졌고, 다시금 예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제야 살 것 같네. 미안, 바깥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여기로 들어왔어. 화장실이야.”
그녀의 얼굴은 화장품 때문에 진주처럼 빛났다. 유리 반지가 껴있는 손가락이 갈색 머리를 쓸어내자, 작은 별 스티커들이 은하수를 이루는 뺨이 드러났다. 스티커들은 작은 움직임에도 열심히 실내 조명등을 튕겨냈다.
“우선 내가 하는 말이 뜬금없어도, 잘 들어봐. 분명 너는 내가 하려는 말을 미심쩍다 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정말로.”
예나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것처럼 턱을 들었고, 부끄러운 웃음만 보였다.
자매 사이에 긴 인사가 필요하지 않아서, 생글거리는 표정은 그들이 이미 대화의 중간에 접어드는 신호 같았다. 하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라고 대답을 할지 모호했다. 그저 익숙한 어조, 온정. 가장 친한 친구와 달에서 함께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펼쳐졌다.
“이제 네 목소리가 잘 들린다. 그런데, 어떻게 기억했어? 오늘이 내가 여기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란 걸?”
“당연히 기억했지. 너도 이제 계획대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 가족들도 만나야 하고. 나는 훌찬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종종 네 생각을 했어. 아니, 너무 많이 했다는 게 더 정확할 거야.”
“고마워. 나도 내일 재활원을 떠나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볼 계획이었어. 몇몇 사람들은 곧바로 베루마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원해서, 우선 그들을 부산 허브까지 배웅한 다음에.”
“마지막까지 모든 환자들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래. 그리고 우리는 모두 꼭 다시 만날 거야. 분명히.”
예나가 고갤 살짝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네가 부산으로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겠어. 물론, 못다 한 이야기야 ‘그곳’에서 실컷 나눌 수야 있긴 하겠지만.”
예나가 자기 입술을 물고는 전보다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한 번 힘껏 감았던 눈은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의도였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거기서 같이 시간도 보내고. 분명 여기서와 다를 거야.”
갑자기, 연발로 폭발하는 포탄 소리에 예나는 통신 기기를 손에 들고 화장실 이곳저곳을 서성였고, 더듬거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반대쪽으로 전환했다.
뒤이어 나타난 화면은 화장실 창문 너머의 광경이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부산의 바다와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나야, 보여?”
꽃 모양의 폭죽들이 높은 허공에서 소리보다 빠르게 만개했다. 금색 불꽃이 허공에 복잡하고, 어지러운 패턴을 남겼다. 마치 밤을 정오의 화려한 빛과 색으로 되돌리는 숙련된 마술사의 기교 같았다. 행정실은 온통 홀로그램 화면에 맞춰 흰, 주황, 빨간색으로 물들었고, 하나의 눈에 그 불꽃들은 곧 가상 세계로 이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종말을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안심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해변가의 사람들 또한 이 축제가 의미하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얼굴이었다.
공기가 가위에 잘리는 날렵한 휘파람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곧 해운대의 아리따운 해안선에서 거대한 빛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빛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래 벌판에서 두 눈으로 불꽃들을 목격한 수만 명의 사람들도 모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치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선이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어느 순간 텅 빈 검은색뿐이었다.
하나는 또 다른 익숙한 현실에서 다시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날까지 여기서 지낼 생각이야. 훌찬의 여동생들과 어머니도 곧 한국으로 오시기로 했어.”
홀로그램 화면은 다시 예나의 모습을 비추었다. 슬픈 기색은 없었지만, 전과 달리 낭랑한 소녀의 면모는 사라져 있었다. 볼과 이마에 붙은 별들은 여전히 반짝였다.
“좋은 생각이야. 우리 부모님도 곧 부산으로 내려가. 나랑 우리 재활원 사람들은 조금 뒤에 참여할 생각이고. 가능한 한 세상에 살 수 있을 날들만큼은 누려보고 싶어서.”
“예를 들어?”
“꼭 대단한 건 아니야. 그냥 걷거나 바라보는 것, 뭔갈 만지고, 추위에 몸을 웅크리는 것? 아니면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 그게 위험하거나, 어렵지 않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외롭지 않겠어?”
“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어. 혼자가 편한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나 도시에서 떨어진 곳이 달갑지는 않고. 문제는 내가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른 상태라는 거야. 여행이든, 남은 시간이든. 아무래도, 나를 잘 아는 것이 먼저인가 봐.”
하나는 물에 빠진 생쥐같이 축 처진 모습을 감추고 싶지 않아 더 크게 웃음 지었다. 특히나 예나같이 가까운 친구에게.
“글쎄? 솔직히, 나는 다르게 느꼈어. 너는 이제껏 내가 알아온 모든 사람들 중에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야. 우리가 서브루나에 있을 때 의료팀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귀여운 추측 같은 걸 내리곤 했지.”
예나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게 뭔데?”
“별 건 아니야. 그냥 우리가 달에 있을 때 네가 매주 루페스 렉타(Rupes Recta: 영어로는 Straight Rock— 폭 2~3km, 길이 110km, 수십억 년 전 달 지각 변동 시 압력에 의해서 ‘구름의 바다’ 지역에 주름처럼 형성된 거대한 벽 형태의 지질구조)를 찾는 이유가 ‘그녀는 외계인 남자친구를 만나려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지. 그러니까 하나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틈 날 때마다 달 탐사를 나가던 이유를 어서 실토하시지!”
예나는 날카로운 빨간색 손톱을 들어 올려 렌즈를 가리켰다.
하나는 터져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느 때처럼 달에서 일과가 끝난 후의 평범한 저녁 같았다. 그때도 예나는 웃을 때 장난꾸러기처럼 앞니를 보이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처럼 뭔가를 정말 좋아하는 게 확실한 사람은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지 않을 거란 말이야.”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달 위에서 누렸던 마지막 야외 활동을 떠올렸다. 그건 긴 세월이 강처럼 흘러서 옛 기억의 한가운데에 무시할 수 없이 파인 깊은 골이었다. 무얼 준비하기 위해 모두가 그토록 서둘러야 했는지 이제야 남김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을 상기하는 건 길고 슬픈 소식의 첫 번째 퍼즐 조각을 집어드는 것과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준 반지는 잘 갖고 있어?”
“응.”
하나가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내가 유일하게 가상 세계로 가져가고 싶은 물건이야. 그럴 방법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지 않아? 이곳 재활원 사람들도 내가 달 기지에 살면서 겪은 이야기 듣는 걸 정말 좋아해.”
“그랬어? 나에게 진작 말했으면, 여러 개를 더 만들어서 보내줬을 텐데.”
예나는 머리를 휙 되로 넘기고는, 자기 반지를 올려 보였다. “너무 웃긴 게, 아마도 나는 이 반지를 만 개 정도 더 만들 수 있을 거야. 달에서 모두 철수해야 했던 시기에 훌찬이 뭘 가져왔는지 알아?”
“뭔데? 게임용 전자 장비들?”
“말도 마. 기지 안에서 캐치볼을 할 때 입었던 운동복이랑, 벽돌 하나야. 그 레골리스(Regolith: 달 표면에서 발견되는 미고결 물질, 달 토양) 벽돌 덩어리 한 개라고.”
하나가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벽돌 때문에 그에게 버림받은 나머지 물건들이 아직 달에 있다는 게 너무 웃겨. 어쩌면 그때 우리 모두 급하게 떠나느라, 그의 방에 불마저도 아직 켜져 있는 게 아닐까?”
“누가 알겠어? 워낙 그 시기가 급박하기도 했고, 우리 모두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잖아. 벽돌이 그에게는 부적이라도 되는 건가 봐.”
하나는 생각에 잠긴 듯 앞머리 한가닥을 배배 꼬았다.
“근데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여전히 달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 아득한 기억이다, 그때가.”
예나가 다시 화장실 밖, 축제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순간에 하나는 재빨리 음량을 줄였다. 어차피 하늘에 거미줄처럼 퍼지는 불꽃과 함성을 이겨내고 예나의 목소리를 듣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닷가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예나의 붉은 눈가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밀집한 낯선 사람들끼리 무심코 서로의 손뼉을 마주치거나 어깨를 두르는 건 당연해 보였다. 그들은 모래바닥을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고, 눈을 마주치는 가까운 누구든 와락 끌어안았다. 예나 역시 모든 열광이 장려되는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만끽했다. 간간이 카메라 너머 친구를 위해서 익살맞은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나는 모든 걸 들을 수 있었다.
작디 작은 푸른 점 위에서,
<블루닷 이펙트>
The Blue Dot Effect
달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