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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Feb 26. 2024

아버지의 노래

이제는 내가 부르는 노래

아버지의 노래                                 

                                                       

  “둥~둥~ 둥~ 개야 둥개야 둥개 두~둥~둥 나라님께 충성둥, 둥~둥~ 둥~ 개야 부모님께 효자둥, 둥~둥~ 둥~ 개야 동기간에 우애둥, 둥~둥~ 둥~ 개야 이웃 간에 화목둥, 둥~둥~ 둥~ 개야 부부간에 화순 둥,


  달강 달강 달강 달강 서울 길을 가다가 밤 한 되를 주워다가 실겅 밑에 묻었더니 머리 검은 생앙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버래탱이 하나 남았는데 옹 솥에다 삶을까? 가마솥에 삶을까? 옹 솥에 삶아서 조랭이로 건질까? 국자로 건질까? 조랭이로 건져서 겉껍데기는 큰 언니 주고, 속껍데기는 큰 오빠 주고, 버래탱이는 작은 오빠 주고, 알맹이는 너랑 나랑 둘이서 쪽~ 뽀개 먹자~”…     

 

 함박산 기슭에 초가집 대여섯 채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스름 땅거미가 내려앉고 어둠이 깔리는 밤이 되면 아버지의 노랫소리 들려온다. 나는 칠 남매 중 다섯째다. 그 시절은 남아 선호 사상이 깊었던 때다. 밑으로 남동생만 둘을 보았다. 막내딸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막걸리 한잔 거나하게 걸치시는 날이면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둥개 둥개와 달강 달강 노래를 불러주셨다.      


사랑한단 말의 표현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 노래를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듣던 때의 따뜻했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의 노래는 내 삶의 지표가 되고, 힘의 근원이 되었다. 삶이 힘겨울 때 아버지의 노래를 떠올리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며 다시금 빙그레 웃으며 털고 일어설 힘이 생긴다.     


 내게는 한없이 따뜻했던 아버지께서 감기 증상이 오래 간다. 큰오빠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폐암 말기란다. 연세도 있으시고 이미 손을 쓸 시기는 지났단다. 우리 칠 남매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하나도 둘도 아닌 일곱이나 되는 자식이 어찌 아버지 한 분의 병이 그리 깊도록 몰랐단 말인가 자책했다.  

    

그러나 슬퍼만 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는 말은 앞으로 사실 날이 며칠 안 남았단다. 기가 막힌다. 그 당시에도 서예 학원, 한시 동우회, 향교 행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셨던 분이다. 오진이 아닌가 싶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처방해줄 것이 없단다. 진통제나 처방받아 편안한 곳으로 모시란다.      


그래서 의료진과 중환자실이 있는 요양병원이 나으리란 생각으로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큰오빠의 직장 근처에 학교 폐교 후 만들어진 시골의 논 가운데 있는 요양병원이다. 우리는 얼마가 될지 모를 아버지와의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주말이면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은 단체 면회가 안된다. 운동장에 모여 서로 교대로 면회하고 나오곤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노래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릴 적 듣던 아버지의 노래는 내가 자라서 결혼하며 듣지 못했는데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평소 일 하실 때도 시조를 흥얼흥얼 읊으시는 취미를 갖고 계셨다. 아버지가 편찮으시고부터 다시 그 시조의 음률에 따라서 어~~~어~~~으~~~우~~아~~~ 하는 시조의 리듬을 밤낮으로 잠도 안 주무시고 계속 읊조리신다.      


주변 환자들의 잠에 방해가 되니 매일 밤 아버지의 침대는 간호사의 처치실 옆에 끌려 나와 있어야 했다. “아버지 왜 그렇게 소리를 하세요. 아파서 그러세요?” 하고 여쭈어보면 ”아니 안 아파“ 하신다. 앉아서 양반다리를 하고 나를 무릎에 앉히셨던 그 자세로 누우셔서도 다리를 서로 꼬고 시조 음률을 읊으시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주무시고 저러시는 것 같다”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아프다 표현하지 않으시고 내가 물으면 “안 아파”하며 웃으신다. 우리 곁을 떠나시는 날까지 아파하거나 찌푸리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저 시조 가락의 노래만 계속하셨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은 짧았지만, 아버지와 옛이야기 나눌 정도의 시간과 아버지를 보내드릴 준비의 시간을 주셨다. 시골의 모내기 철이다. 밤이면 개구리가 구슬프게 노래 부른다. 개구리의 노랫소리와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어우러져 한적한 시골 밤에 아름다운 하모니의 음악회를 마친 뒤 모내기가 끝나는 6월이 되면서 아버지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오월 모내기 철이면 개구리의 노래는 구슬피 들리지만, 아버지의 노랫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아버지의 그 노래를 내가 부르고 있다. 내 아들아이를 기르며, 또 어린이집 원아들에게 아버지처럼 그들을 내 무릎에 앉히고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아버지의 노래를 들려준다. 이 노래를 듣는 그 아이들도 나처럼 훗날 이 노래를 기억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이 노래가 내 아버지에게서 내게로, 나에게서 우리 아이에게로, 우리 아이에게서 그 아이에게로… 이어져 불리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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