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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Apr 04. 2024

달콤 살벌한 연인

애정과 애증 사이 어디쯤 인지

“어머님 죄송합니다…”하고 망설이자 “아휴~ 또 물렸어요?”하신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물리니 등짝이 성할 날이 없다. 지난주 물린 자국이 없어지기도 전인데… 둘이서 같이 잘 놀다가도 아차 하는 순간 앙~ 하고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럼 여지없이 등에 침이 묻어있고 겉옷을 들쳐 보면 동그랗게 이빨 자국이 있다. 


두 돌이 막 지난 진아와 현석이 둘은 어린이집 공식 커플이다. 아침 등원 길부터 어린이집 앞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다고 얼싸안고 좋아하며 손을 꼭 잡고 들어온다. 그렇게 매번 붙어 다니는 다정한 연인이다. 특히 현석이가 진아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이 나란히 손잡고 놀다 현석이의 어깨가 진아의 입 부분에 닿은듯한데 어깨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 첫 물림을 시작으로 둘 사이 애증인지 애정인지 모를 물고 물리는 현상이 시작되었다. 


 현석이는 물리면서도 진아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닌다. 진아가 미끄럼 놀이하면 같이 따라 올라가다 물린다. 진아가 볼풀장에서 놀면 볼풀장에 뛰어들어 진아와 부딪쳐 등짝을 또 물린다. 심하게 물리지 않으면 울지도 않는다. 좀 심하게 물렸을 때만 잠시 울지만 언제 물렸냐는 듯 또 진아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진아도 그런 현석이가 좋은지 둘이서 손을 잡고 다니며 놀다가 갑자기 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화가 나서만도 아니다. 반가워도 물고, 자기의 진로에 방해가 되어도 문다. 어느 시점에서 무는 지 잘 파악이 안 된다. 늘 함께하는 두 친구를 무슨 수로 갈라놓아야 할지 고민이다. 


 둘이서 노는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소꿉 영역에서 다정히 앉아 진아가 현석이에게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준다. 현석이는 쭉~~~ 마시는 흉내를 내더니 진아가 들고 있는 주전자를 빼앗으려 한다. 아마 현석이도 진아에게 음료를 따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자 갑자기 현석이의 내민 손등을 바로 물어버린다. 옆에서 보고도 순식간에 번개같이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이 없다. 무는 것을 놀이로 아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는 점심 식사 후 양치질하고 나오는 진아를 현석이가 반갑다고 달려가 얼른 끌어 앉자 진아도 반갑다고 서로 부둥켜안더니 갑자기 현석이의 목덜미를 덥석 물어버린다. 현석이는 놀라고 아팠는지 소스라치게 소리치며 운다. 진아를 불러 우는 현석이의 피멍이 빨갛게 든 목을 보게 했다. “아파, 아파”하며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호~하고 입으로 불어준다. 


 그 모습에 힘이 쭉 빠진다. 그러지 말자 손가락 걸어 약속해 놓고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진하다. 상황을 알고 본인이 참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는 우리가 잘 돌보는 방법밖에 없다. 곁에서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물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니 답답하기만 한 노릇이다. 오늘도 나는 물린 현석이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 한 보따리고, 물은 진아 어머님께도 물지 않도록 잘 보겠다는 매번 같은 말로 하는 사과의 민망함이 한 보따리다.


 이제는 더 이상의 사과는 진정성 없는 입에 발린 말 같아 사과로 끝내기에는 너무 죄송하다. 직장 다니시는 진아 어머님의 시간에 맞춰 저녁 퇴근 시간 무렵 두 분의 부모님을 함께 불렀다. 순간에 벌어지는 불가항력적 사고를 이해해 달라는 부탁과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굳은 표정의 현석이 어머님께서 먼저 도착하시고 뒤이어 진아 어머님께서 양손에 제과점 종이 가방 두 개를 들고 들어오신다. 들어서면서 죄송하단 말씀부터 하신다. “현석이 어머님과 선생님들께 너무 죄송해서요. 제가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하고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쳐낸다. 그 모습에 우리 모두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안타깝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잘 못 봐서 자꾸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니 두 분 어머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에 눈을 마주 보기 힘이 든다. 그런 진아 어머님을 보면서 현석이 어머님께서도 “서로 같이 아이 키우는 처지인데 어쩌겠어요.” 하며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는 잘 봐달라 말씀하신다. 


 그렇게 진아 어머님의 눈물까지 보고 나니 어린이집의 책임과 의무가 더 무겁게 와닿는다. 이제 더 이상 물고 물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교사회의를 통해 당분간 우리 진아가 좀 자라서 스스로 자제가 될 때까지는 반을 분리해서 가능하면 덜 부딪히게 하기로 했다. 그래도 어느 틈엔지 둘이서 손을 꼭 잡고 놀고 있는 이 커플이 눈에 띄면 모두가 화들짝 놀라 얼른 둘을 갈라놓는다. 오늘도 어린이집에서는 이 달콤하고 살벌한 연인의 밀애를 감시하느라 모든 선생님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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