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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주기

03.

by 세기의 사랑

03. 놓아주기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건 바로 그 사람에게서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증오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다

-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중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처음 이 구절을 접했었을 때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확 와닿은 구절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가 그렇고 나 또한 그렇듯 살다 보면 얄팍해서 미운 사람이 있고 너무나도 비겁해서 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미워하고,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인데, 왜 미워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미워할 때도 있다. 미워하는 사람의 행동이 하나하나 거슬리고 얄미워 보이는 게 인격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미워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우리는 ‘미워하다’ 와는 사뭇 다른 감정을 발견할 수 있다. 미워함 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감정, ‘ 안쓰럽다’이다. 악의 없이 정말 순수하게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내가 바꿔줄 수 있을 거 같은데’ 혹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바꾸면, 조금만 바꿔주면, 조금만 바뀌면 더 나아질 거 같은데 ,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 바뀔 방법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답답한 모습에 나도 덩달아 답답해진다. 답답함이 미움이 되고, 미움이 안타까움이 되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함께 동시에 미움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에겐 미워하는 것을 놓아줄 수 있는 용기, 안타까움을 끊어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미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그 사람은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절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고통받는 건 결국 걱정하는 우리뿐이며 괜히 사서 걱정하는 게 아닌가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괜히 호의가 내 안에서 스스로 적의심으로 바뀌기 전에 ‘너는 니 인생 살아라~’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그게 미워함을 멈추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또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한 미워함을 멈추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도 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내 안에 잠식해 있는 나의 부분을 미워한다는 것이기에 내가 먼저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듬는다면 스스로를 행복에 더 가까이 가져다 놓고 지금과 같은 대혐오의 시대를 탈피시킬 수 있는 작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오늘 하루도 행복을 머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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