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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8. 2023

졸업 그 후 :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졸업 그 후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학 생활 마지막 학기, 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일이었기에 이제 막 자격증을 따고 사회의 문턱에는 발도 내밀지 못한 대학생이었지만 벌써 꿈을 이룬 것만 같이 부풀어 있었다.


나는 새내기 사회복지사였다.

새내기 사회복지사인 내가 졸업 후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생각보다 다양해 보였다.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등 대상도 다양했고, 의료사회복지, 학교사회복지, 교정복지 등 직종도 다양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중 나의 원 픽은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사회복지였다.

하지만 학교사회복지는 당시에만 해도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였고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한 직종이었다.

또한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실습, 인턴 등의 짧은 경력이 필요했다.

졸업 후 취업을 기대했던 부모님은 일반적인 취업을 권유하셨지만


'나는 돈을 벌려고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


라는 지금 생각하면 웃픈 선언을 하고 투잡하겠다는 각오로 학교사회복지 인턴직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막 태동하는 분야이기에 인턴 자리를 찾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졸업식이 다가오자, 나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직종까지 지원할 정도로 초조해졌다.

같은 년도 졸업이었던 언니의 취업이 무산되고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닌 터였다.

언니는 졸업 전부터 학교와 연결된 그 분야 중견기업에 취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회에 무사 입성할 줄 알았건만... 고용 한파는 예정되어 있던 학생들의 취업을 모두 무산시켰다.

1월 말까지 그저 입사일만을 기다리고 있던 언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비단 우리 가정만의 일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취업 취소, 고용 축소 등의 취업준비생으로서는 무서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마음이 급해진 나도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마침 학교에 새로운 행정직 일자리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근 학교들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그런데 화기애애하던 면접에서 '그런데 왜 이 일을 하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자, 말문이 턱 막혔다.

하고 싶은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돈 벌려고 사회복지를 한 게 아니라던 나는 어느새 불안감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직종으로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답을 못하고 얼어버린 나를 보고 면접관들은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면접을 마쳤다.

어쩌면 그때 그 면접이 나의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면접 이후 나는 직장을 찾는 일에 조금 더 신중해졌다.

사회 분위기와 취업난이 두렵기는 하지만 내가 평생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은 정해져 있었다.

당장의 두려움 때문에 경로를 벗어나 헤매고 싶진 않았다.

휩쓸리지 말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자!

결심은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있었다.

어쩌다 보니 같은 해 취준생이 되었던 언니 역시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여전히 인턴십 같은 곳이 아닌 제대로 된 취업을 하길 바랐다.

취업난 때문인지 적성에 안 맞았던 것인지 동기들은 다른 분야로 취업하거나 공무원을 준비하는 쪽으로 많이 빠졌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졸업식이 되었다.

이제 정말 대학생도 아닌 백수가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공교육에 이어 대학까지 쭉 학생이었는데 이제 정말 보호막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학교복지실 보조 공고가 나왔다. 집에서 2시간 반 거리 경기도 소도시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2시간 반 거리,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느 도시에 있는 초등학교, 월 30만 원의 열정페이.


나는 주저 없이 지원하였다.

지금껏 10만 원도 안 되는 용돈을 받고 지내온 대학생인데 뭐 더 나빠질 게 있겠는가?

이른 취업을 한 나는 순진하게도 노동의 가치를 셈할 줄 몰랐고, 어떤 조건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먼저였다.

2시간 반 거리의 학교를 면접을 위해 찾아갔을 때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모른다.

첫 면접은 아니었지만 쉽게 나타나지 않았던 기회였기에 간절했다.

손에 땀을 쥐고, 학교를 들어섰을 때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당시 내 모습을 떠올려 보면 내가 어떻게 면접에 통과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면접 장소에 들어서니 환하게 웃는 선생님 한 분이 맞아주셨고 따뜻한 라벤더 차 한잔을 내주셨다.

라벤더꽃이 동동 떠다니던 투명한 찻잔에 긴장됐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곧 1대 1 면접이 진행되었다.

나의 미래 계획과 분야에 대한 지식수준을 확인한 선생님은 곧 연락 주시겠다는 말을 끝으로 면접을 끝내셨고, 그로부터 1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3월이 되기 며칠 전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드디어 나에게도 직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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