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간 나는 선임을 찾아가 바로 퇴사하겠다 말했다.
마치 몸집을 부풀린 복어처럼 기합이 들어가 있던 선임은 내 말에 모든 힘이 빠져버렸다.
사실은 선임만 남은 그날,
센터장이 선임에게 '팀장 시켜줬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래 직원들이 너를 무시해 그러는 거 아니냐, 아래 직원 잡는 것도 능력이야.'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몰랐었던 많은 일들을 듣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직원들은 퇴사 전까지 2번이고 3번이고 자신을 찾아와 퇴사하겠다며, 더 이상 못 견디겠단 말을 했단 것이다.
모두가 힘들어했으나 나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어 괜찮은 줄 알았다고, 압박한 건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대로 내가 나가면 엉망이 될 거라며 나를 잡고 또 잡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정신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게 정말 말이 되냐고 묻는데, 제3자가 봐도 그게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였더라고요.'
마침 딱 1년을 채운 시점이었다.
나는 그렇게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센터장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피해 다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실 내가 걸고넘어지면 걸릴 게 많은 사람이었다.
당시 우리 재단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어떤 사건에서 본인도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임은 자주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선임에게도 남은 정이 없었다.
처음에는 배신감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부정적인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정이 뚝 떨어진 것이다.
그제야 생각해 보니 나는 그곳에서 호봉에 맞지 않는 급여(1호봉)를 받고 있었다.
아무리 돈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해도 1호봉 받고 있는 걸 여태까지 문제 삼지 않았다니 나도 참 호구였던 것 같다.
센터장은 새해가 다가오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급여체계를 개편하여 센터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의 급여가 하향되었었다.
상급 관리기관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시정하라 하였지만 안하무인인 센터장이 말을 들을 리가.
(당시 지역마다 있던 같은 기관 센터장 월급 중 우리 센터장이 탑 3이었다.
30대 중반에 10년 남짓한 경력, 심지어 관련 자격증마저 미비하였음에도 근거 없는 급여 인상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센터에 사회복지사는 내가 유일하다는 것도 참 골치 아픈 일이었다.
분명 복지기관인데 나 빼고 전부가 유관 자격증만 가지고 입사했다.
그러니 나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나의 5번째 퇴사일이 다가왔다.
내가 맡았던 아이들과 부모님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작은 것 하나하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ㅍㅍ이가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존경한다고 하네요.'
'선생님이 ㅎㅎ의 인생에 은인이에요. 평생 감사하며 살게요'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내 끔찍했던 5번째 회사생활의 유일한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