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날들
트리시에게는 두 마리의 강아지 헥터와 바비가 있다. 그중에서 헥터는 흰색과 검은색의 털이 섞여있고 과체중이기 때문에 뒤뚱뒤뚱 걷는 강아지이다. 헥터는 사람을 좋아해서 언제나 리즈집 현관문 앞에 아침마다 서 있고는 했었다. 리즈는 문앞에 누군가 있는 인기척이 느껴져 밖을 바라보면 언제나 헥터가 문밖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헥터의 하루 일과 중 하나이다. 문을 열어주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 밑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그리고는 궁금한 눈을 하고 리즈를 바라보고 있다. 꼭 맛있는 것을 달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헥터는 10살쯤 되었다고 한다. 트리시도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유기견이였는데 옛 주인에게 학대를 당한 거 같다고 한다. 아마도 뱀에게 물려서 부상을 당했는데도 주인이 보살피지 않았는지 그때 입은 부상으로 아직도 다리를 절뚝 거린다. 리즈는 그저 강아지가 살이 쪄서 뒤뚱거린다고 생각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등 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혹 같은 것이 보였다. 그와 같은 것이 배 쪽에도 있었다. 그저 귀여운 강아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지극한 할머니 강아지이다. 헥터는 암에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여전히 사람들을 보면 무척 반가워하는 귀염둥이다. 헥터는 항상 트리시의 옆을 졸졸 쫓아다닌다. 트리시가 정원에서 나무를 베거나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을 때도 항상 함께한다. 그런데 시골에는 벌레가 많다. 종종 벌레에게 물려 힘들어하기도 한단다. 특히 벼룩에 물리면 정말 괴로워한다.
리즈는 장을 보러 가면 헥터에게 줄 간식거리, 뼈다귀나 개껌 같은 것을 들고 오곤 한다. 물론 유기농 생 닭다리도 별식으로 사 오는 경우도 있다. 트리시는 그럴 필요 없다고 신신당부하지만 너무 귀여운 녀석들에게는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헥터가 트리시와 같이 살게 된 것은 5년 전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입양할 때 헥터였고 그 이름 그대로 트리시에게로 와서 많은 사랑을 받고 살고 있다. 트리시는 항상 강아지와 함께 침실로 들었고 아침에도 함께 일어나다. 문제는 강아지들이 새벽 4시면 일어난다는데 있다. 그 시간에 같이 일어나 문을 열어주면 나가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곤 했다.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헥터를 데리고 리즈는 가끔씩 산책을 나간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들다. 가다가 주저앉기를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이다. 꼭 할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나갈 때의 기분으로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구경하며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집 앞에 도착하면 힘이 넘쳐난다. 아마도 집에서 쉬고 싶었던 모양이다. 리즈는 헥터의 등을 쓰다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생명체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헥터도 느끼는지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따뜻한 감촉을 나눈다. 사랑스럽다 요 녀석.
저녁때가 되어 해가 저물고 산골마을에 다시 어둠이 밀려들었다. 주위는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깜깜하여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밤이 되었다. 가끔씩 고라니 같은 동물이 정원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짐승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산골의 밤은 무섭지만 고요하고 아름답다. 집안에 있으면 더욱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동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신음소리 같기도 하다. 산 짐승이 내려온 거라고 리즈는 생각한다. 많이 피곤한 탓이었는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놀라 일어난다. 바로 침실로 향해 깊은 잠에 빠져든다.
다음날 아침 누군가가 리즈의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쾅쾅쾅'
"리즈"
"리즈"
아니 이건 트리시의 목소리이다.
문을 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트리시는 울고 있었다. 아니 흐느끼고 있었다
"트리시 무슨 일이에요?"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
트리시는 평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이었다.
리즈는 한 번도 트리시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트리시는 슬픔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헥... 터가...... 어젯밤에.......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흐흐흐 죽..... 었어"
리즈는 어제 함께한 헥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트리시 어떡해요 헥터 불쌍해서......."
리즈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슬퍼하는 트리시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리즈 내일 헥터를 화장시킬 거야 그런데 난 그 아이를 떠나보낼 수가 없어..... 이 집의 정원에 묻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나면 헥터를 데려갈 수가 없잖아 흐흐흐. 난 헥터의 뼈단지를 내 침대 밑에 둘 거야 항상 나와 함께 하도록..... 말이야 "
트리시는 헥터를 잃은 슬픔이 너무나 컸는지 생기를 잃었다.
며칠 동안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는 헥터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헥터는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정들었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헥터가 꼬리를 흔들며 집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떠올라 그리움이 더욱 진해진다.
그렇게 헥터는 떠났고 트리시는 힘들어했지만 남겨진 바비는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더욱 사랑을 원했고 친구를 잃은 바비도 외로웠는지 트리시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는 떠나고 남아있는 그들은 서로 위로하며 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은 즐겁다. 하지만 그들이 떠났을 때의 커다란 슬픔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이별이 힘들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인생이지 않은가?
아프고 힘든 이별이 있지만 또 다른 사랑으로 채워지는 삶이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리즈는 생각한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자.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원 없이 나눠주리라 비록 나중에 슬픔이 밀려와 힘들지라도.
그것이 인생이니까
리즈는 트리시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더 깊어짐을 느낀다.
리즈와 트리시는 언어도 인종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가족 같다
꼭 엄마 같다. 마음속의 이야기를 모두 꺼내어 조잘거려도 흠잡지 않고 같이 공감해 주는 따뜻한 엄마.
리즈는 트리시와 오래도록 같이 살고 싶어졌다.
일이 너무나 힘들어서 다른 지역으로 옮길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마음은 접어두기로 한다.
트리시와 가족같이 지내는 삶이 지금은 더없이 소중하니까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