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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단단한 내 하루

하루를 바꾸는 것은 큰 사건이 아이라, 작은 움직임이다.

by 김남정

"아무리 강요해도 지나치지 않는 건 자유다."


책 <심플하게 산다>에서 도미니크 로로의 문장이 오늘도 내 귓가에 머문다. 자유는 누구도 대신 챙겨줄 수 없는 감각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비워내야 찾아오는 것. 내 하루는 그 자유를 연습하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일주일 3회 필라테스를 한다. 아침 9시 첫 시간, 필라테스 선생님의 절제된 목소리와 호흡에 따라 몸의 균형을 맞추고 근력을 기른 지 어느덧 5년 차다. 꾸준히 하다 보니 단순한 운동을 넘어 몸과 마음의 수련으로 다가온다. 필라테스는 내 삶의 리듬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균형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 의도한 호흡 속에서 천천히 찾아온다."


호흡을 세고 동작을 반복하며 나는 내 안의 흔들림을 바라본다. 땀 한 방울, 힘이 들어가는 근육, 그 모든 감각이 '지금'을 붙잡아준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몸을 세우는 일은 마음을 세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요즘 나는 또 다른 중심을 세우는 습관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물건 하나 버리기."


처음엔 사소한 것에서 시작했다. 낡은 머그컵, 읽지 않는 잡지. 그리고 며칠 전, 큰 결심을 했다. 4년 전 작은 딸이 아빠 생일 선물로 사 온 버추오 커피머신을 당근마켓에 올렸다. 손이 떨렸다. 그 기계엔 추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딸이 웃으며 포장지를 뜯던 그날의 표정까지 선명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진을 남기고 놓아주었다. 비워진 자리에 가벼운 공간이 들어왔다.


"버린 것은 물건이 아니라, 과거의 집착이었다."


그 빈자리에서 나는 자유를 맛봤다. 비움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다음 주엔 언젠간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옷장에 고이 보관한 원피스도 처분해야겠다. 최근 몇 년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울 앞에서 입어 보았다. 한때는 참 좋아했던 옷이지만, 지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몇 년 사이 나는 변해왔고, 그만큼 물건도 필요가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시간이 흐르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마 이 과정이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현재의 나에게 맞는 물건과 공간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살고 싶다. 그래야 나의 하루가 정리되니까.


"내 삶이 예술 작품 같아지길 바라는 마음"


비워진 공간만큼 내 하루는 풍성해진다. 다양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다시 읽고 또 고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지고 내 하루가 정돈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편과 영화를 보고,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버를 간다. 왜 이렇게 애쓰는 걸까? 내 하루를 멋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저 내 삶이 예술 같아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언젠가 서점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책을 읽었다. 처음 알게 된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이었다.

어린 딸 리나는 학교에서 '주'로 시작하는 단어를 써오라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엄마는 '주인'이라는 단어를 알려줬다. 그런데 리나는 '주인'대신 '주인공'이라고 써냈다. 그리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주인: 어떤 것의 소유자, 책임자, 관리하는 사람

주인공: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존재, 의무나 책임보다 존재감과 살아 있음이 중요

한 글자 차이로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내 삶의 주인보다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일상의 결을 세밀히 고르는 오늘이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작지만 단단한 하루가 결국 나를 만든다고. 균형을 맞추고, 비우고, 읽고, 쓰는 이 반복이 내 삶의 선을 그리고 색을 입힌다. 어쩌면 난, 내 몸과 마음을 캔버스 삼아, 하루하루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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