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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Oct 02. 2021

“갈림길”

하율이네 집

Two-Way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하나 마나 한 상담이었다. 대학 입학 후 ‘인성과 학문’ 패스를 위해 처음 만난 이 남자 교수는 하율이에게 ‘미국 교포’ 아니냐고 대뜸 물었었다. 하율이는 살아오면서 이미 그런 이야기를 대충 서네 번은 들은 적이 있기에 첫 만남임에도 자신만의 특징을 교수가 발견한 듯하여, 학생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하율이는 왜 자신이 미국 교포 같아 보이는지 그 누구에게도 정확한 이유를 들은 적이 없었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교수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그냥 느낌이 그래요.’라고 할 게 뻔하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다들 이유를 그렇게 둘러댔으니.


4년의 시간이 정처 없이 흐른 뒤, 머릿속 세상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끼워 맞추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러 다시 만난 교수는, 기껏 이런 부처님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하율이는 제발 누군가가 마음을 편하게 갖는 방법,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좀 알려줬으면 했다. 혹시나 휴학 중임에도 상담을 요청한 것인데, 시간만 낭비된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언덕 위의 학교에서 터덜터덜 한참을 내려가면, 광역 버스 정류장이 있다. 광역 버스는 집 근처까지 한 시간 만에 데려다주는데 집 근처에 내려도 마을버스를 타고 15분은 가야 하율이는 언덕 위의 집에 이를 수 있다.  광역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걸어서도 15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을버스를 타도 15분인 게 늘 신기했다. 학교도 언덕 위, 아파트도 언덕 위라 종아리가 땅기니 습관적으로 마을버스에 오르는 게 일상이긴 했다.


휴학 중이어서 딱히 학교에 갈 일이 없었고, 더욱이 교수가 화상으로 이야기해도 된다는 걸 굳이 만나러 갔는데, 상담은 정확히 18분 만에 끝났다. 평소 같으면 시큰한 히비스커스 차와 과자 한 봉이라도 내줬겠지만, 교수는 코로나 핑계로 휴학생 대접도 없이 바로 상담에 들어갔다. 하율이는 왜 자신의 멘탈이 조각났는지를 설명하는데 15분 정도를 썼고, 교수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3분 만에 제시했다. 서운함 때문인지, 억울함 때문인지 광역 버스 안에서 살짝 울뻔했지만, 뭔가 지는 기분이 들어 꾹 눌러 참고 겨우 겨우 버텨내며 집 근처에 도착했다.


하율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순간 머리가 정지한 듯했다. 언니 대접이라고는 전혀 할 생각 없는 동생이 둘이나 있는 집으로 가야 하나, 타노스가 버티고 있는 독서실로 가야 하나. 둘 다 전혀 내키지 않았다. 그냥 오천 원짜리 한식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열 장 정도 남은 쿠폰은 그나마 위안을 준다.


하율이는 공시생이다.


One-Way


하율이는 학생부 속 장래 희망 기재란에 ‘1학년 아나운서’, ‘2학년 아나운서’, ‘3학년 아나운서’라고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행정학과를 3년째 휴학 중이다.


고등학교 내내 꿈을 아나운서라고 적어 냈음에도 그 어떤 담임 선생님도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하율이의 까무잡잡한 피부로는 절대 불가능하기에 다시 태어나야 하며, 지금 눈보다 눈이 세 배는 더 커져야 하고, 몸무게도 최소한 10킬로 정도 줄여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모두 또랑또랑하다며 큰 목소리를 칭찬할 뿐이었고, 하율이는 그 칭찬을 아나운서 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착각했다.


사실 하율이는 엄마가 제일 이해되지 않았다. 옷이며 신발, 헤어 따위의 스타일부터 색까지 모든 것이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며, 딸의 자존감을 떨어뜨릴지언정, 공부하라는 말은 그다지 않더니 갑자기 고3 때부터 공시생 엄마 역할에 몰입 중이다. 수시부터 모든 지원 학과를 행정학과로 억지로 맞추게 한 엄마는 기어코 딸을 일반행정직 9급 사수생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하율이가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있는 꼴을 보지 못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타박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기 친구만 집에 오면 늘 이야기의 시작은 둘째부터였다.


“언니, 이쯤 했으면 복학해서 알바라도 해.”


하율이는 둘째가 더 미웠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엄마랑 잘 맞았다. 엄마 체형을 닮아 비교적 날씬했던 동생은 발레 학원에 다니며 연기를 배웠다. 목소리 하나는 자신 있던 하율이도 동생이 들고 다니는 흰 종이 속 대사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언제나 기다리는 것은 태권도 학원의 노란 버스였다. 하율이는 기합을 넣다가 목소리가 더 커졌다고 믿었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대사를 책 읽듯 하는 주제에 둘째가 언니의 사람 구실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연기자 지망생인 둘째가 하율이의 복학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하율이의 방 때문이었다. 하율이는 독방을 썼고 둘째와 막내가 같은 방을 썼는데, 하율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숙사로 옮겨 가 자연스레 둘째와 막내도 각자의 방이 생겼었다. 하율이는 시험 준비를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실망한 동생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오롯이 방때문이었다.


“언니, 대학교 친구들이 안 보고 싶어 해?” 이제는 막내까지 속을 긁는다. ‘대학에 남아 있는 친구가 있어야 날 보고 싶어 하든가 말든가 하지...’ 하율이는 막내에게 화를 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집에 마음 줄 사람, 한 명도 없다.


No-Way


원래는 딱 1년만 더 집에서 인터넷 강의로 공부해 볼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고시원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하율이네 집과 고시원이 즐비한 학원가는 불과 지하철로 10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거기로 나가서 산다고 하기에는 자기 생각에도 이상해서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하율이는 엄마에게 ‘관리형 독서실’에 다니겠노라고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하율이가 말한 관리형 독서실은 독서실 측에서 짜준 일과를 철저히 지켜야 하는, 공무원 준비를 위한 전용 독서실이었다. 오전 8시까지 독서실에 도착해야 하니 정말 일찍 나와야 하고, 밤 10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사실상 집에서는 잠만 자면 되었다. 비록 둘째가 자기 알바비로 고시원 월세에 보태줄 테니 제발 나가 달라고 할 정도로, 동생들 반응이 최악이었지만, 독서실로 나가게 된다면 하율이는 거실에서 잠을 잔다며 상황을 무마시킬 생각이었다.


독서실로 들어가려고 책 몇 권을 캐리어에 넣고 있는데 둘째가 그새를 못 참고 자기 짐을 하율이의 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독서실을 만든 사람은 실장님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학생의 진도에 맞게 공부 계획을 짜주었고, 총무로 불리는 오빠가 독서실 회원의 관리를 하는 구조였다. 총무도 공시생이었다. 그럭저럭 엄마가 시야에 멀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일 년 정도는 다시 공부할 마음이 생기는 듯했다.


독서실에서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실장과 총무는 하율이의 일정을 꼼꼼히 챙겨주었고, 장수생인 회원들은 번갈아 가며 하율이와 스터디를 같이 하자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나자 상황이 묘해졌다. 실장이 짜준 계획은 총무가 뒤엎었고, 총무가 뒤엎은 계획은 다시 실장이 뒤엎었다.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난감했다.


장수 회원들의 친근함은 스터디 참여 권유에서 종용으로, 종용은 협박으로 점점 변질돼 갔다. 실장을 따르는 회원들은 하율이가 총무에게 붙었다며 비난했고, 총무를 따르는 사람들은 실장에게 붙었다고 낙인찍었다. 결국, 하율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선금을 낸 독서실의 퇴소 날짜는 아직 4개월이나 더 남아 있었다.


오전 7시 30분, 집을 나온 하율이는 언덕 아래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왔다. 독서실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목적지가 어디인 줄 모른 채로 광역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의 창에는 출근길 무표정한 사람들의 표정이 비쳤다. 그들 틈에서 하율이는 자신의 얼굴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갑자기 자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율이는 자신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전화를 꺼내 자신을 확인했다. 거기 하율이가 있었다.


집이란 무엇일까?
하율(가명)씨는 일반행정직 9급을 4년째 준비하던 공시생이었습니다. 과거형으로 하율씨를 소개한 이유는 현재 하율씨는 대학에 복학을 했고, 자신이 원하는 진짜 길(way)을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하율씨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뭘 물어도 늘 자신 있는 높은 톤으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모습이 마치 미국 교포처럼 느껴진 것 같다는 하율씨는 그렇게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무언가를 말로 전달해 주는 일을 했으면 지금의 삶이 자랑스러울까, 인터뷰 끝에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여정 끝에서 하율씨만의 ‘길’을 꼭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각색을 허락해주신 하율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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