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혁이네 집
오락기계
거실이 한 다섯 평 정도 되었을까? 어쩌면 여섯 평 정도는 되었을지 모르겠다.
은혁이의 아빠와 엄마는 늘 거실이 큰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했다. 집을 늘려 가고 싶은 욕망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테지만, 욕망의 이유가 조금 특이했다. 그리고 너무 달랐다.
은혁이 아빠는 동네 친구와 함께 술 마실 공간이 더 필요했다. 건강 때문에 담배는 피우지 않아도 술은 친구 핑계로 못 끊는 아빠였다. 아빠는 거실이 작아 술 먹자고 부른 친구가 다섯 명만 되어도 한 사람이라도 먼저 앉으면 절대 안 되고, 동시에 ‘하나, 둘, 셋’하고 앉아야 겨우 앉을 수 있다며 늘 불만이었다. 다른 가족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뒤에서 놀렸지만, 집이 좀 더 컸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소망을 굳이 앞에서 타박할 이유는 없었다.
엄마는 수납장을 놓을 공간이 더 필요하다며 작은 거실을 아쉬워했다. 은혁이네 집 베란다는 세간 살림으로 가득했고 아빠의 낚시 도구까지 널브러져 있다 보니 두 사람 동시 통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근무가 없는 주말마다 날씨에 상관없이 낚시를 나가던 아빠는 낚싯대를 말려야 한다는 이유로 베란다에 낚시 도구를 펼쳐 놓으셨다. 다 마른 후 정리하는 것은 엄마 몫이었는데, 엄마도 지쳤는지, 어느 순간부터 펼쳐진 낚시 도구는 세간 살림의 일부처럼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은혁이는 문방구 단골이었다. 살 건 없어도 늘 들렀다. 문방구의 유리문 앞에는 목욕탕 의자만큼이나 낮은 의자에 앉아서 해야 하는 오락기계가 두대 놓여있었는데, 그중 한 기계에 들어 있던 이십 원짜리 ‘갤로그’에 은혁이는 마음을 빼앗겼다. 3학년 은혁이의 유일한 관심은 적군 비행기들에게 져서 오락이 끝날 때 표시되는 랭킹에서 세계 1등을 찍는 것이었다. 오락기계에 표시되는 1등이 올림픽 1등처럼 정말 세계 1등이라고 믿었다.
4학년이 되고 보니 무대를 전자오락실로 옮겨야 했다. 문방구 오락기계의 의자가 영 불편했다. 전자오락실에도 갤로그가 있었기에 월담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담배냄새가 옷에 너무 심하게 베 오락실에 간 것을 아빠와 엄마에게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다짜고짜 있는 돈 다 내놓으라는 동네 형들도 무서웠다. 그래도 전자오락은 포기할 수 없었다. 군무원인 아빠는 매일 500원 정도 용돈을 챙겨 주었는데, 갤로그에서 보글보글, 보글보글에서 원더보이 시리즈로 이어지는 동안 오락기계는 은혁이의 주머니를 잘도 털어갔다.
아빠의 방법
“은혁아, 아빠 누구 오니까 명진이네 좀 다녀와.”
아빠가 천 원짜리 두어 장을 쥐어주면서, 소주 좀 사오고 쥐포도 몇 장 구워 오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다. 지폐 몇 장을 손에 든 은혁이는 동네 슈퍼인 ‘명진이네 슈퍼’ 앞에 도착했다. 명진이네 바로 길 건너편에는 오락실 뒷문이 있었다. 아주 잠깐 주저했다. 잠시 망설이던 은혁이는 당당하게 발걸음을 오락실로 옮겼다.
원더보이를 딱 한 판만 하려던 참이었다. 아빠 친구가 오려면 일이십 분은 더 있어야 할 것이고, 대충 원더보이 한 판 하는 시간도 이와 비슷했다. 아빠가 준 천 원짜리 지폐 중 하나를 오십 원 짜리 동전으로 교환한 은혁이는 오락기계에 동전을 하나 밀어 넣고 게임을 시작했다. 오늘따라 쉽게 넘어가던 첫 스테이지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자꾸 자꾸 빨리 죽었다.
이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폐는 온대간대 없고 오십 원짜리 몇 개만 손에 남아 있었다. 마음이 갑자기 급해진 은혁이는 무언가 상황을 만들어 내야 했다. 일단 분위기부터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 동네 형들에게 돈을 빼앗겨서 울다 늦었다며 우는 시늉을 할 참이었다. 그 외에는 달리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울먹이는 연습을 하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엄마~~"
울음 섞인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대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아빠는 은혁이의 팔을 낚아채 르망 승용차의 보조석으로 밀어 넣었다. 시동이 걸린 차는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차 안의 아날로그 시계는 아홉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은혁이 머리카락과 옷에 벤 담배 냄새가 차안 구석구석 쾌쾌하게 퍼져갔다. 은혁이는 연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내려."
한참을 달리던 아빠의 차는 산 속인지, 들판인지 어딘가에 멈춰 섰다. 울다가 지쳐 잠이든 은혁이는 한동안 꿈을 꾸다가 깼지만, 깬 것을 들키기 싫어 눈을 뜨지 않았다.
"저기 저 아저씨에게, 앞으로 너 여기서 살 거라고 말해. 받아 줄 거야." 내리라는 말에 다시 울기 시작한 은혁이가 차에서 내리자 차의 창문을 연 아빠가 말했다. 그리고 아빠의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은혁이는 그냥 울었다. 어느 정도 다 울었다고 생각한 은혁이는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는 없기에 알 수 없는 시설의 정문으로 걸어갔다. '고아원인가... 고아원이 확실해.' 속으로 생각했다. 정문에 도착한 은혁이는 뜻밖의 장소에 자신이 버려졌음을 곧 깨달았다.
소년원이었다.
'곧 돌아오시겠지, 돌아오실 거야.' 다행히 은혁이의 바람대로 아빠는 머잖아 돌아왔다.
아빠는 며칠 동안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집 안 분위기가 서슬 퍼렜다. 답답한 채로 지내던 은혁이는 집안의 구조가 약간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거실의 소파 오른쪽에 공간이 생긴 것이다. 소파를 왼쪽으로 민 건데, 소파의 위치가 현관 쪽으로 삐져나와 집이 더 좁게 느껴졌다. 은혁이는 궁금했지만,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여전히 아빠는 화난 표정이었다. 그냥 속으로 수납장이 들어오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소파는 여전히 벽과 떨어져 있었지만, 벽 쪽으로는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가끔 소파와 벽 사이를 보시다가 "으이그~"라며 은혁이에게 눈을 흘겼다. 또 며칠이 흘렀다. 여전히 변한 것은 없었다.
아들의 방법
"어떻게 지 아빠 얼굴만 있니..."
딸에 대한 처가 식구들의 얼굴 평가가 이어졌다. 또래에 비해 일찍 결혼한 은혁이는 첫 딸 은서를 안기까지 십 이년이 걸렸다. 두 번의 유산을 거쳐 힘들게 얻은 딸이 엄마를 좀 닮았으면 했는데, 자기를 너무 닮아 안타까웠다. 장모님과 장인어른마저 손녀의 얼굴에서 사위만 보인다며 한 숨 쉴 정도니, 말 다했다 싶었다.
열 살 정도 되면 엄마 얼굴이 비칠 줄 알았는데, 은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혁이를 더 닮아 갔다.
"아빠, 밟아줄까?"
은서가 은혁이의 귀에 속삭였다. 대체로 딸의 목소리가 작아지면, 아빠와 무언가를 작당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은혁이의 손목을 잡아끌어 애플 와치에서 타이머를 십분에 맞춘 은서는 아빠 등에 올라 타 밟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닥 별 느낌이 없었는데, 열 살 은서는 제법 묵직했다.
은서의 시간은 늘 정확했다. 타이머가 울리면 절대 추가 서비스란 있을 수 없다. 어디선가 자기 얼굴의 두배는 족히 되는 아이패드를 들고 와 침대 위 아빠 얼굴에 가져다 대고 각도를 이리저리 맞추었다. 만 이천 원이 결재되었다. 은서는 서울 할머니 -친할머니를 그렇게 불렀다.-가 공책 사라며 준 만 원에, 어제와 오늘 노동의 대가로 정당하게 벌어들인 이천 원까지 더해, 총 만 이천 원으로 쿠키런 '현질'을 했다.
보다 못한 은혁이의 아내는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 노트북을 하나 마련해줬다. 마침 코로나로 인해 은서도 아빠의 패드보다 안정적으로 비대면 수업을 할 수 있는 피씨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아빠의 패드로부터 관심을 돌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구입을 결정했다.
"아빠, 밟아줄까?"
은서가 은혁이의 귀에 속삭였다. 그날 밤 은혁이는 은서가 피씨용 게임인 태이즈런너를 할 수 있도록 계정을 만들어 줬다. 엄마는 혀를 차며 앓아누웠다. 그리고 태이즈런너 현질의 서막이 올랐다.
집이란 무엇일까?
은혁(가명)씨의 아빠가 소파를 옆으로 밀어 거실에 공간을 확보한 이유는 아들에게 오락기계를 구입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락기계 크기만큼 공간이 생겼지만, 덕분에 거실이 더 비좁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 집을 나올 때까지 아빠는 다시 소파를 벽에 붙이지 않았습니다. 군무원의 봉급으로 구입하기 힘들었기에 은혁씨는 끝내 원더보이가 설치된 오락기계를 갖지는 못했습니다만, 소년원 때문인지, 아빠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아니면 둘 모두가 이유였는지 전자오락실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은혁씨는 패드를 갈망하는 은서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에 빠져든다고 합니다. 그 집을 떠나기 전까지 매년 생일마다 소파 옆에 오락기계가 들어올 지 모른다는 기대를 반복했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각색을 허락해 주신 은혁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