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3. 굽깎기(trimming: 削り )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했죠? "
많은 사람들의 작품들 속에서 반건조된 내 흙의 모양새를 기억해 낸다.
아직 손에 감(感)이 안 온다. 눈으로는 이해가 가는데 뇌를 통해 내 손으로 이어지기 까지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운전학원 다닐 때랑 똑같다. '아... 도대체 똑바로 주차가 안되지?'
어디까지 굽을 깎아야 그릇 비슷하게 되는 건가.
" 선생님, 어디까지 깎아내야 해요?"
강사님이 마스크 너머 나를 쳐다보며, "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했어요?"
" 처음이라 다른 강사님이 거의 도와주셔서..."
" 자... 이 방법을 한 번 써보세요. 이 굽칼과 포인터를 엇갈리게 작품 위에 올려놓고 작품의 높이를 재요. 이 높이가 도기의 안까지의 깊이에요. 손톱이나 굽칼로 덜 건조된 표면을 살짝 표시를 하죠.
그러면 이 도기의 벽에서부터 밑둥까지 균일한 두께가 돼요.
다음은 물레 위 한가운데 작품을 놓고 중심을 찾아가야 해요. 손바닥으로 살짝살짝 치면서.... 연습!"
전체적으로 균일한 두께. 그리고 중심 잡기.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열심히 중앙을 찾아간다. 여기서 잘못 흐트러지면 돌아갈 수도 더 이상 나아갈 단계도 없다.
손으로 만드는 공예가 밸런스를 잃는 다면 쓰임새 가 없다는 장인의 말이 기억난다.
과거에는 공예가 실용성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요즘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예가 단순한 기능을 넘어 감상할 수 있는 예술로 발전했다고 언젠가 아침 뉴스에서 보았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일본 공예의 인기가 높아 여러 전시회와 갤러리를 통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Galerie Mingei와 NAKANIWA 같은 공간에서 일본의 전통 공예품을 소개하며, 프랑스의 문화에 맞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대규모 미술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의 지역 공예품이 주목받아 공예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단다. 부럽다. 한국의 공예품도 아름다운데....
반대로 현대미술에서는 공예적 요소를 통합한 작품들이 증가하고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보여주기고 한다. 다 깨진 접시 조각이 철사로 얽어 놓은 접시가 예술품이라고 했다.
쓸모 있다는 기준은 어떤 사람이 만드는 걸까.
생활에 이용 가치가 있으면 생활 공예이고 아니면 예술이라는 구분이 점점 애매해진다.
어쨌든 생각의 잔 가지는 잠깐 쳐두고...
중심을 찾아 밑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미리 표시해 둔 부분까지 조심스럽게 한다고 하는데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이다.
" 모르겠어요.."
손을 물레에서 일단 놓았다.
" 뭐가 문제일까요? 자... 나는 왼손잡이지만 그쪽에서 보면 같은 방향이에요. 내가 굽칼을 어떻게 잡고 있죠?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물레와 칼의 방향이 역으로 닿으면 흙이 깎여요. 같은 방향으로 칼날을 뉘이면 헛질만 하는 거니까요. 곱게만 하려고 하면 흙이 변화가 없구요. 힘조절! 맞아요. 잘하고 있어요."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쑥스러워 얼굴을 못 들겠다.
모든 굽 깎기가 끝나면 양손으로 만든 것을 들어본다. 가마로 들어가고 유약을 바르면 지금 무게에서 10〜15% 정도만 가벼워진다. 수분이 빠져나간 무게이다.
들어보니 묵직하다. 묵직하다는 느낌이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감자를 든 정도 일까.
"이 정도의 무게가 좋아요. 저라면, 지금 이 무게가 맘에 들어요. 가끔 아주 얇게 깎으신 분도 있지만 그건 자기 취향과 같은 거예요.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실생활에 사용 시 부담이 되는 점도 고려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해 보는 것이 좋아요. "
완성된 작품을 손에 들어 보고 강사님이 말했다.
겁이 나서 깎을 때마다 소심한 마음이 든다.
'훅!' 하고 도기 몸뚱이를 칼이 깎아내릴 것을 무서워하다 보니 진작 깎아 버려야 할 흙이 남아 있어 들어보면 여전히 무겁다.
생각이 너무 많은 때가 그렇다. 욕심이기도 하지만 게으르기도 하다.
그 많은 잡생각을 과감하게 깎아 버리면 내 그릇이 가벼워져 새로운 것들을 담아 넣어도 마음이 무겁지 않을 텐데.
집에 오는 길에는 커피 원두를 사러 단골 매장에 들렀다.
항상 구입하는 원두는 산미가 적은 다크 로스팅이다.
매장 입구부터 나는 구수한 커피 볶는 냄새가 굽깎기에 긴장했던 근육까지 이완시킨다.
이것도 아로마테라피인가?
머그컵이 완성되면 좋아하는 라테를 만들어 그 컵에 담아 마셔 보는 상상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