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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Mar 31. 2023

“분단의 상처, 드러내어 치유하다.”

평화문화진지

“분단의 상처, 드러내어 치유하다.” - 평화문화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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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깊이 새겨진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한 곳은 DMZ다. 철조망을 두른 경계부와 그 속을 채우는 자연 지대는 두 땅을 가르며 굵은 띠를 만들었다. 발길이 끊긴 경계부 안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분단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의 승패는 수도 방호시설의 철저한 배치에 달린다. 서울 북측 지역들은 DMZ 못지않게 방호를 위한 군사 요충지로 사용되었고, 곳곳에 깊은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 북측 관문 중 한 곳이었던 도봉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도봉구는 도봉산과 수락산이 만나 만들어낸 골짜기에 자리한다. 그중 골짜기 폭이 가장 좁아지는 ‘병목’ 지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이동 경로 차단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경로 차단과 함께 방어 목적으로 세워진 대전차 방호시설은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가 만나는 지점을 갈랐고 땅에 깊은 상처를 냈다.


방호시설로 사용되던 당시, 1층에는 군사시설로 전차와 각종 물자가 있었고, 2-4층에는 군사시설을 위장하기 위한 시민아파트가 자리했다. 평시에는 군인들의 거주지로 사용되다, 전시에 내려와 방어선을 빠르게 구축했다. 그런 곳이 휴전 이후 쓸모를 다해 일부가 철거되고 방치되면서 땅의 상처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흉터로 남게 되었다.


평시와 전시, 상반된 성격을 담는 공간이었던 대전차방호시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런 가치를 시민과 정부는 알았다. 리모델링을 통해 시설의 흔적을 보존하고 문화 예술 공간인 ‘평화문화진지’로 탈바꿈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한 것이다.


5개의 동으로 구분되는 건물은 동마다 성격을 달리하지만, 지붕에 조성된 옥상 휴게 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기존 구조와 공간 앞에 장방형 공간을 새롭게 추가하여 동마다 중정을 만들었다. 전차가 있던 공간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고 소총 저격 공간은 전시장이 되었다.


수평선이 강한 건물에 포인트를 주는 전망대는 새롭게 추가된 건물이다. 그곳에 올라서면 이곳이 왜 군사요충지였는지 알게 된다. 수락산과 도봉산, 저 멀리 북한산 일대를 보여주고, 도봉구와 의정부를 가르는 중랑천의 흐름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쟁으로 새겨진 깊은 상처는 흉터로 남았지만, 이 흉터는 이제 도봉구의 자랑이 되었다. 화창한 봄날 소풍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각종 공연을 통해 활기찬 목소리가 동네로 퍼진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치유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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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코어건축사사무소 ( @core_architects_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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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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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마들로 932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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