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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May 05. 2023

“내를 건너서 숲으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내를 건너서 숲으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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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불광천을 바라보며 걷다, 이면 도로 깊숙이 들어서면 보이는 도서관의 이름은 특이하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비단산 근린공원 초입에 자리한 도서관이기에, 그 위치를 대변하려 지은 이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인지되고 기억될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짓는 명칭에 문장이 사용되었다는 건, 특별한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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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숲도서관은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 도서관이 자리한 땅이 시인의 생가는 아니지만, 그가 다녔던 숭실 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숭실 중학교가 근린공원 서측에 자리한다. 그곳에서 윤동주 시인은 7개월의 짧은 기간을 수학하면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는 1938년 5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새로운 길’ 첫 문장이다. 땅을 가르는 천을 건너 숲으로 향하고,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 마을을 마주하는 여정은 고난 뒤에 펼쳐질 평화를 담는다. 민족 수난 길을 겪던 일제 강점기, 치열하고 아팠던 새로운 길과 그 길을 나서는 청년의 마음가짐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의 다짐 속 전진하는 힘은 오늘 소개하는 ‘내숲 도서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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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제품으로 이분화되는 건축에서 전자는 역사, 전통, 맥락, 장소와 같은 인문학적 요소에 기반을 두어 공간을 전개한다. 기념관, 전시품이 정해진 미술관, 상징성을 지녀야 하는 건물에 그 특징이 두드러지며, 윤동주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 또한 이러한 상징성을 지닌다.


산을 향해 수렴하는 건물은 계단형 광장을 만들어 산을 바라보게 하고, 반대편은 날카롭게 뻗어간다. 역동적인 힘을 가지는 건물은 길은 같지만, 매번 새롭게 그 길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는 시 속 청년의 마음과 같다.


도서관 양측에는 초등학교와 놀이터가 있고 인근엔 다섯 개의 학교와 주거지가 접해있다. 놀고 공부하며 산책하다 마주하게 되는 도서관은 로비가 없는 대신 건물 곳곳에 입구를 두어 어디서나 건물로 진입할 수 있게 했다. 반대로 어디로 나가든 공원을 통해 비단산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그의 시에 나타난 민들레, 까치, 아가씨, 바람과 같은 고난 속 ‘희망’이요, 대로변으로 단절되었던 동네와 산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사다리꼴 대지로 인해 대로변과 수직인 선과 대지의 사선이 만난 공간은 다채로워졌다. 사선의 일부는 계단이 되고, 수직선은 열람실이 되었으며, 그 둘 사이를 이으며 생긴 빈 공간은 층간 시선 공유가 가능하다. 눈높이에 맞게 뚫린 창, 서가 위로 뚫은 얇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보이는 푸른 잎은 공간을 동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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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본인의 의지를 드러내었던 그는 글은 힘이 없다면 자신을 자책했다. 부끄러움 때문에  끝없이 고뇌했던 청년이었지만, 그의 시는 오늘날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빛이 되어준다. 육첩방을 밝혔던 등불이 더 이상 꺼지지 않는 지금, 그 이유를 도서관을 걸어 다녀 보며 느껴보는 건 어떨까(도서관 상층부엔 시인과 관련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압축과 절제, 단어 속 상징이 시에 잘 녹아있듯, 도서관에도 그 특징이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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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jo_jinman_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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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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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증산로17길 50

매일 09:00 - 22:00 (월요일 휴무, 주말은 18:00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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