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의 재미

호달달 긴장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날

by 박붕어

건강검진이 재밌을 수가 있나?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은 제목과 달리 그다지 재미는 없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단순히 몸무게의 증감에만 신경을 썼는데, 이제는 정말 내가 건강한 사람인지와 정상범위에 있는 사람인지 검사를 받는 기분이랄까? 30대 후반 이제는 쫄리기 시작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연차에 따라 몇 가지 늘어난 건강검진의 항목들을 보자면 마음이 살짝 씁쓸해지고, 평소 식습관과 음주 습관은 어땠는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왔는지 문진표를 작성할 때부터 나는 건강검진을 할 준비가 되었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막상 빛바랜 핑크색 검진복을 입고 있으면 배고픔에 쓰린 이 위장도 괜히 아픈 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하.. 속 쓰려.

이런 건강검진에서 재미를 찾고 싶으면, 최첨단으로 업그레이드된 건강검진의 시스템을 체험해 보면 된다. 2년이면 자주인데 그 짧은 2년 사이에 사람을 부르는 방식은 카드키를 찍어 전광판으로 호명하는 걸로 대부분이 대체되었다. 오, 이지이지. 시력검사기계는 미쳤다. 오락기 같다. 스틱을 움직이고 맞추기 한다. 또 하고 싶다. 이게 재미다!

또, 나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만 살아 북적이는 인파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건강검진일은 재미난 날이 된다. 특히 연말이 다가와 회사에서 11월에 건강검진을 끝내라고 한 사람들이라면, 11월 마지막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하는 검진을 추천한다. 새해 일출 보며 떡국 먹는 행사에 버금가는 인파를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오전 일찍 7시에 도착하더라도 접수에 대기만 70번대가 넘어간다. 오전 내내 많은 사람들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을 우연히 대면할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말 제각각이라 이 부분도 재밌는 구경거리다. 기본적으로 나처럼 배고픔에 굶주리는 좀비들, 키재기와 체중재기를 두 번은 넘게 하고 싶어 하는 한번더들. 피 뽑을 때 '으악' 하는 엄살들. 양말을 신었다 벗었다, 의자에 앉아 흥얼거리는 요들송들. 로얄매치하는 폰게임 중독자들(그게 나야). 어쨌든 대체로 어리버리 미니언즈처럼 '여기 가세요, 저기 가세요.' 말 잘 듣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나라 사람들 참 착하다는 생각에 인류애까지 충전된다. 와 근데 사람 진짜 많다.

아직 10개도 채 하지 않았는데 순번은 줄어들지 않고 배고픔은 이제 느껴지지도 않는다. 검진결과는 뻔하겠지. 눈은 상당히 나빠졌고 살은 5킬로나 쪘다. 화나요. 그냥 검진 끝나고 뭐 먹을지 생각하며 마지막 재미를 찾아보자. 속을 달래는 죽은 먹을 가치도 없다. 그냥 400m 앞 찾아둔 빵집으로 돌진할 생각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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