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살겠노라 한다면 작은 것들을 향해 끊임없이 슬퍼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누가 내게 일러주지 않았지만 그저 숙명인 듯 그게 정답인 듯 어느 날의 나는 이 오랜 각오를 문득 기억해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뭐가 그리 슬프냐 물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슬픔의 무게 때문이다. 명치끝에 달린 추가 입술을 잡아당긴다. 슬픔의 무게는 결코 덜어지지 않는다. 나는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저 슬픔의 어깨에 손을 두르기로 했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의 슬픔을 바라보며, 말 대신 글자로, 입 대신 손가락으로.
밖으로 흐르지 못한 눈물은 속으로 삼키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 손끝으로 새어 나와 글자가 된다.
나는 내가 슬프고, 네가 슬프고, 개가 개라서 슬프고, 고양이가 고양이라서 슬프고, 사람이 아닌 것들이 슬프다. 하여 맛이 좋아도 슬프고, 즐거워도 슬프고, 입이 웃고 있어도,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한결같이 슬프다.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게 타고난 것이므로.
내 생의 임무는 슬픔에 잠겨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조금 더 편하게 숨 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부단히 써내는 것이다.
그렇게 쏟아진 슬픔을 그러모아 한 장 한 장, 차곡히 쌓아 올리는 일.
슬플 각오가 필요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