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국내 최고령 현역 야구감독인 김성근 감독은 1969년부터 지금까지 지도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단 한 번도 억지로 야구장에 출근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 몰래 큰 수술을 받은 후, 기저귀를 차고 야구장에 출근해 기저귀가 피로 묵직해져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지경에도 야구장에서 선수들을 가르쳤죠.
그의 책 <인생은 순간이다>에 소개된 일화를 읽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뭐 그렇게까지?'싶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 조금은 과해보이기도 했고요. 김 감독 역시 가족들 몰래 수술을 받은 점에 대해서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했지만, 아마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게 만든 걸까요?
원래 나는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사람이다. 문제가 있으면 하루 종일 고민하고,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음 날 야구장에 가서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맞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으니 야구장에 가는 길은 언제나 희망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설렘 속에서 야구장에 갔다.
- 김성근, <인생은 순간이다> 중에서
저는 위 문장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가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이유는 '오늘은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하는 설렘이 있는 덕분이었죠.
'야구장'을 '회사'로 바꾸어 읽어볼게요. 일글러 여러분은 회사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가요? 저는 한때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음악을 들으며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할 생각을 하면 너무 끔찍해서요. 회사에 출근해도 일이 없었고, 성장은 정체됐고, 동료들 간에 감시만이 난무했거든요. 시계가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고, 회사에 출근해서는 시계가 빨리 돌아 얼른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러다 이직을 하고 저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스스로도 믿기 힘들 만큼 내일 회사에 가는 일이 기다려졌어요. 콧노래를 부르며 내일 출근할 때 입을 옷을 미리 문 앞에 걸어두기까지 했죠. 그 옷을 입고 출근하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습니다. 저를 180도 바꾸어 놓은 데는 높아진 연봉, 깨끗한 사무실, 친절한 동료들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러한 요소들은 3개월이 지나면 약효가 사라졌을 거예요.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게 만들어준 건 내가 회사의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내 의지만큼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회사가 저에게 직접적으로 일에 관여할 기회를 주고, 제 의지만큼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믿어주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저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졌고, 더 큰 인정을 받고 싶어 퇴근 후에도 직무 관련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내가 변화하는 만큼 회사가 변화했고, 회사가 변화하는 만큼 나도 성장하는 과정을 겪으며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저는 이직이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본인이 가장 일하고 싶은,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환경을 찾아나서는 것 또한 직장인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직장인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나는 '어차피' 속에서 '혹시'를 만들어내는 게 최고의 인생이라고 본다.
- 김성근, <인생은 순간이다> 중에서
김성근 감독의 말씀처럼 '오늘 내가 회사에 출근해서 무언가를 바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출근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노력해봐도 어차피 안 될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혹시'를 꿈꾸며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행복한 출근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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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