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하루 24시간을 살고 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한 시간도 없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출근해서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해야 할 집안일들과 육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치면 이제는 내일을 위해 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날이 반복됐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를 찾고 싶었다. 군대를 막 전역했을 때 느꼈던 어떤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패기를 되찾고 싶었다. “하면 된다. 난 할 수 있다.”라고 믿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래서 시작했다.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하기. 출근 전 두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이른바 ‘모닝러너(Morning learner) 프로젝트’다.
모닝러너(Morning learner) 프로젝트
“나, 내일부터 새벽 다섯 시에 일어 날거야.”
아내가 되물었다.
“일어나서 뭐 할 건데?”
“글쎄, 먼저 15분 정도는 책상에 앉아서 잠 깨는 시간을 가져야지.”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 책이나 좀 읽지.”
막상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우긴 했지만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사실 ‘아침형 인간’이 되어 아침을 길게 보내자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생각이다. 2003년 출간된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2016년 출간된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 2018년 출간된 로빈 샤르마의 『변화의 시작, 5 AM 클럽』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 나올지도 모른다.
이 책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새벽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조용히 자기 자신 속에 몰입해보는 명상의 시간,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스트레칭 하고 움직이는 시간, 오늘 해야 할 일을 기록하며 정리해보는 시간,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는 시간. 사실 이런 예시들은 아침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해도 충분히 의미 있을 만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은 아침이 아니라 오전, 점심 식사 후, 저녁 먹은 뒤에 해도 당연히 좋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로 가이드라인을 주었기 때문에 책의 독자들이 “아, 이런 방식으로 아침을 보내면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싹 틔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싶다.
물론 새벽에 일어나야하는 이유가 뚜렷한 사람, 예를 들어 당장 다음 달에 아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어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될 테니까.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다섯 시에 일어나긴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내버렸다.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을 읽고 감명 받아 아침형 인간으로써의 삶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며칠 가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일어나서 마땅히 할거리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며 새벽 다섯 시에 처음 일어났던 그날,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다. 집 안의 모든 사람들은 잠 들어 있는데, 밖은 미치도록 고요한데, 대체 어떤 행동으로 시간을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이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같은 자기 계발서를 꺼내 읽어보기도, 인도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스티브 잡스가 즐겼다는 명상을 해보기도 했다. 세계적인 작가들은 다들 새벽 시간에 글을 썼다고 해서 마치 내가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를 쓴 빅토르 위고가 된 것처럼 글을 써보기도 했다.
독서, 명상, 글쓰기. 내가 했던 행동들은 모두 다 생산적인 것이었다. 두뇌의 골든아워인 새벽 시간에 걸맞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 즉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날그날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골라잡았다. 하루는 소설책을 읽고, 하루는 명상을 했다. 또 다른 날에는 글을 썼다. 상쾌한 공기가 마시고 싶은 날에는 밖에 나가 산책을 했다. 나름대로 주어진 시간에는 충실했지만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매일 저녁, ‘내일 새벽에는 뭘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채우는데 급급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값지게 쓰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Morning routine 5’라는 다섯 개의 루틴은 “어떻게 하면 새벽 시간을 알차게 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1) 물마시기
- 공복 물 한 잔은 보약이다. 일어나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신다.
2) 움직이기
- 몸이 깨어나야 정신도 깨어난다. 가볍게 걷거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다.
3) 명상하기
- 모든 일의 열쇠는 마음에 있다. 5분간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4) 계획하기
- 하루를 조망하는 시간, 오늘을 어떻게 살아볼지 계획한다.
5) 몰입하기
- 나에게 중요한 일, 가치 있는 일에 몰입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나는 이 다섯 개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과정마다 해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진 않다. 몸이 찌뿌둥한 날에는 더 많이 움직인다. 무엇인가 골똘히 고민해야할 문제가 있는 날에는 ‘좌선(Zen meditation)’하는데 시간을 더 쏟는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단계는 다섯 번째 활동인 몰입하기다. 보통 이 시간에는 중요한 일이지만 긴급하지 않아 미루고 있던 일을 한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느냐는 그날그날 달라지지만 다섯 가지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처음 일주일 동안은 다섯 가지 과정을 반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계속하다보니 점점 쉬워졌다. 지금은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뜬 다음에는 다섯 가지 과정을 자동적으로 반복한다. 그러면 어느새 창밖이 밝아져있다.
다섯 개의 루틴을 반복하면서 달라진 점은 더 이상 ‘내일은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섯 개의 루틴은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다. 몸무게를 재어보거나 책을 네 쪽씩 읽을 수도 있다. 명언을 한 문장 외워보거나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어볼 수도 있다. 가족들의 잠자는 모습을 힐끗 보는 것도 나의 새벽을 값지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는 ‘Morning routine 5’를 매일 아침 반복해가면서 아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가는 모닝 러너(Morning learner)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새벽 시간이 기다려져 저녁이 되면 빨리 잠들고 싶다. 혼자서는 멀리가지 못할까봐 함께 하는 모닝 크루들도 만들었다. ‘모닝러’들이다. 모닝러들과 함께 나는 매일 새벽 5시, 기상 인증을 공유하며 서로를 응원한다. 이때가 하루 중 가장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간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지 싶다.
[‘모닝러’들의 모닝 러닝 스토리 1] - 사랑한 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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