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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Jun 01. 2020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

최초는 영원하다, 까르띠에 산토스

이안 해리슨이 쓴 『최초의 것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컴퓨터, 연극, 자전거, 성냥, 지퍼, 스포츠, 자동차, 음식을 포함한 세상의 많은 것들의 기원을 소개하는 책이죠. 이 책의 서문은 스티브 포셋이 썼습니다. 스티브 포셋은 배, 글라이더, 동력 비행기, 열기구 등을 이용해서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써낸 모험가입니다. 열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을 최초로 횡단했습니다. 또한 열기구를 이용해 최초로 세계일주를 하기도 했고요. 심지어 혼자서 말이죠. 그는 자타공인 ‘최초 마니아’입니다. 그는 ‘최초의 것들’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초는 영원하다. 최초란 오직 한 번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고라는 수식어는 나중에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유행이 변함에 따라 충분히 갱신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스티브 포셋의 말처럼 최초는 오직 한 번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브랜드들에서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기 위해 힘을 쏟습니다. 세상에 없었던 것,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속에 최초가 될 수 있는 비법이 있습니다.




루이 까르띠에의 뮤즈

알베르 산토스 뒤몽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고 합니다. 1847년 그는 자신의 재주를 살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히는 몽토르게이 거리에서 유명한 보석상이었던 아돌프 피카드의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열심히 보석세공술을 연마하던 중 갑작스럽게 아돌프 피카드가 죽게 됩니다. 아돌프 피카드의 보석상을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인수하면서 ‘메종 까르띠에’라는 보석상을 만들게 되고, 이 보석상이 지금의 까르띠에라는 명품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까르띠에라는 브랜드에서 지갑, 핸드백, 벨트와 같은 가죽 제품이나 향수, 시계와 같은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지만 사업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엄연한 보석 브랜드였습니다.


Louis Cartier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메종 까르띠에’를 운영하던 그 시기에는 프랑스 곳곳에서 무도회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사교 모임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700년대 후반에서 1800년대 초까지 프랑스를 메우고 있던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가 좀 희미해졌기 때문일까요? 여하튼 그 시절 귀족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주 파티에 어떤 쥬얼리를 하고 갈까?”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메종 까르띠에’는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보석상으로 회자되게 됩니다. “그곳에 가면 정말 멋진 것들이 가득하다.”라는 소문이 귀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죠. 실제로 영국을 포함한 다른 유럽에 보석들을 납품하게 되고 ‘왕의 보석상’이라는 수식어도 얻게 되었고요. 이렇게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의 사업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파리를 넘어 미국, 영국에 까지 매장을 열게 됩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가던 1900년, 루이 까르띠에는 그 시대 최고의 셀럽이었던 알베르 산토스 뒤몽이라는 브라질 출신의 비행사를 알게 됩니다. 그는 라이트 형제와 함께 탁월한 비행술, 그리고 비행사로서의 인내심, 비행선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이로 유명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보석상인 루이 까르띠에와 세계 최고의 비행사 알베르 산토스 뒤몽이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결국 둘은 친구가 됩니다.


Photo by Billy Huynh on Unsplash



     


최초의 손목시계

산토스      


1901년 알베르 산토스 뒤몽은 친구인 루이 까르띠에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한 가지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비행 중에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데 비행기 안에 있는 시계를 보기도 불편하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 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아마 루이 까르띠에가 생각해봤을 때도 이해가 되는 불편함이었을 겁니다. 비행사로써 비행기 조종대를 잡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몸을 뒤져서 회중시계를 꺼낸 다음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고. 상상만으로도 불편하지 않나요?


출처 : wikimedia commons


결국 루이 까르띠에는 알베르 산토스 뒤몽만을 위한 시계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게 바로 1904년에 출시된 세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산토스입니다. 에르메스의 경영자였던 장 루이 뒤마가 영국의 여배우 제인 버킨을 위해 만들어주었다는 에르메스 버킨백의 탄생 스토리와 비슷하지 않나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산토스


이렇게 만들어진 까르띠에의 산토스라는 손목시계 모델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물 시계로 가장 많이 추천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 판매되고 있는 산토스의 디자인은 1904년에 발표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120년 전 스타일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800만 원이 넘는 값을 치르고서 까르띠에 산토스를 구입합니다. 다른 선택지들도 많을 텐데 왜 20년도 아닌, 120년이나 지난 오래된 디자인의 산토스라는 시계를 사는 걸까요? 단순히 까르띠에라는 브랜드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이기 때문일까요?

    

출처 : www.cartier.ch

그 이유는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라는 점이 특별하게 와 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까르띠에 매장에 가면 산토스 앞에서 “이 시계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입니다.”라는 이야기를 점원들이 합니다. 쇼윈도 앞을 대수롭지 않게 스쳐지나갔더라도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시계가 조금 특별해 보이기 시작하죠. 갑자기 고풍스러운 느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경우에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문화재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고가의 시계는 생필품이 아닙니다. 사치품이죠. 사치품에 있어 가성비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닐 겁니다. 브랜드가 가지는 가치나 제품이 가지는 의미 같은 것이 훨씬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라는 타이틀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스토리가 담긴 특별한 물건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겠죠? 이런 느낌이 산토스의 디자인을 120년 동안 고수할 수 있게 해준 게 아닐까요? 그런데 실제로 까르띠에 산토스 모델은 정말 멋스럽습니다. 그 시계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엔틱함이 있습니다.


출처 : www.cartier.ch

    

천막 천과 마차 덮개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청바지를 만든 미국의 리바이 스트라우스,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일회용 면도기를 만든 킹 캠프 질레트, 먼지 봉투 없는 세계 최초의 사이클론 진공청소기를 만든 제임스 다이슨. 모두 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입니다. 좋은 브랜드,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루이 까르띠에처럼 최초의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것에서 살짝만 변형하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최초’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최초’를 만들어낸 순간, ‘최초’라는 수식어는 당신의 브랜드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 다음 차례는 ‘최고’가 되는 것이겠죠?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Reference

까르띠에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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