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놀면 뭐하니?'에서 정지훈씨가 찬 시계는 '롤렉스 스카이드웰러(Rolex sky dweller)'라는 제품입니다. 18k 금과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시계는 약 6,000만원 정도한다고 합니다.
수천억대의 자산가이자 연예인 부동산 부자 1위로 거론되는 비(정지훈)씨에게는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롤렉스라는 브랜드의 시계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새롭지만 구식이 아닌 것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 부의 상징, 셀럽들이 사랑하는 시계, 롤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폰 봤어? 지난 모델에서 디자인이 많이 바뀌었던데?”
"다음 달에 풀체인지 된다는 그렌져 기사 봤어? 전에 것 보다 훨씬 멋지던데?”
“오버핏? 그건 이제 유행 지났지. 요즘에는 타이트하게 입잖아.”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빠르게 변합니다. 그 사실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자, 내 주변 1미터 안에 보이는 물건들 중에 5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개나 되나요? 아마 대부분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새 제품들일 것입니다. 당장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애플과 삼성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새로운 제품을 발표합니다. 우리들이 묶여 있는 약정 기간 2년을 버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그 무언가가 내 눈 속에 자꾸 들어오는데 그 유혹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이런 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새로운 제품을 내놓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제품일수록 더 잘 팔립니다. 업계 1위인 애플을 이기기 위해서 삼성에서는 2019년 ‘갤럭시 폴드’라는 폴더블폰(foldable phone)을 내놓았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스마트폰의 기준을 바꿔버린 것이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고객들은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실 세상에 나오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그렇습니다. 그동안 듣고 보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만 고객들의 마음을 사고 주머니를 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브랜딩을 추구 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명품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Rolex)입니다.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롤렉스라는 브랜드 네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Rol + ex
‘시계’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호롤로지(Horologe)’에서 가져온 ‘rol’과 ‘정교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익스퀴지트(Exquisite)’에서 가져온 ‘ex’가 합쳐진 단어가 Rolex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해보자면 ‘정교한 시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롤렉스를 대표하는 모델 중에 서브마리너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영화 007 시리즈에서 영국계 영화배우 숀코네리가 맡은 제임스 본드가 차고나와 더 유명해진 모델이죠. 1953년 출시된 이 모델은 7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외형이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출시되었던 당시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디자인으로 호평 받았습니다. 하지만 10년 뒤, 20년 뒤에도 비슷한 디자인을 고집했습니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외면할 법도 했지만 롤렉스 서브마리너는 1970년대에도 없어서 사지 못하는 물건이었습니다. 2020년인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습니다. 다음에 입고되면 연락 달라는 예약조차 걸어둘 수 없습니다.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예약 자체를 받지 않으니까요. 참 신기하죠? 1000만원이 넘는 시계를 구입하는데 예약도 받아주지 않는 다는 사실이.
매달 새로운 브랜드들에서 놀라운 기능을 가진 스마트워치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70년이나 된 낡은 디자인의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사려고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가지고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정도 금액이면 다른 선택지가 많이 있을 텐데 왜 서브마리너를 사게 되었는지. 그들은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게 서브마리너라는 걸 알 테니까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70년이라는 시간동안 같은 디자인을 고집하다보니 시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저 모델이 서브마리너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광택 없는 검은색, 녹색, 파란색 다이얼에 한 눈에 들어오는 야광 인덱스, 거기에 장인들의 다섯 손가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다섯 개의 뿔이 달린 왕관 로고. 슬쩍 보더라도 “아, 이거 롤렉스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롤렉스는 계속해서 같은 디자인을 고집했기 때문에 이 디자인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매년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매년 출시될 때마다 색깔이 달라지고, 다이얼의 모양이 달라지고, 사용되는 소재도 달라졌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큰마음 먹고 구입했는데 내년에 전혀 다른 디자인의 신제품이 나오면 고객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어차피 내년이 되면 또 다른 모델이 나올 텐데 이걸 굳이 1000만원이나 주고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요?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단어 중에 감가상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물건의 자본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죠. 새 자동차를 산 뒤 하루만 지나도 그 차는 중고차가 됩니다. 불과 하루라도 해도 중고차 딱지가 붙는 순간 가격은 급격하게 낮아집니다. 1년, 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 구입했던 금액의 70%, 60% 대로 값이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롤렉스의 서브마리너는 중고 제품들도 일정 가격대를 유지합니다. 판매가 대비 중고가의 가격이 그렇게 심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죠. 한 마디로 가격방어가 잘 됩니다. 감가상각이 심하지 않은 것이죠.
그 이유는 디자인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해 내가 1000만원을 주고 샀던 롤렉스 서브마리너는 내년에도 1000만원, 아니 그 이상의 가격이 될 수 있지만 기본적인 디자인은 비슷합니다. 그러면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가격이 올라갈수록 돈을 벌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물론 경제학적으로는 근거가 부족한 ‘느낌적인 느낌’에 가깝지만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새롭지 않아도,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한 느낌만 준다면 언제나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1953년 이래로 겉모습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은 것, 어쩌면 이게 바로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전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요?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서브마리너라는 모델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디자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다이버시계의 아버지가 되었죠.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다이버 시계들은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오마주한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면 다들 비슷하게 생겼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롤렉스의 서브마리너를 통해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브랜딩 전략에 대한 고민을 해볼 차례가 되었네요. 나를 브랜드로 만든다고 했을 때 70년 동안 변하지 않고 지켜나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만 찾아낸다면 우리의 브랜드는 롤렉스처럼 전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ference
[로고의 비밀] '롤렉스' 로고는 왜 '왕관' 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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