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함부로 계약하면 안 돼
집안일하면 설거지, 빨래, 요리정도로 떠올리는 사람은 집안일을 안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결혼하고 알았다.
집안일은 100가지가 넘을 수 있다는 걸.
계속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내가 하는 게 더 편하고 내가 더 잘하니 집안일의 99%는 내 몫이다.
그러나 남겨진 1%는 끝까지 안 하고 싶다.
그건 집밖으로 나가는 집안일인 분리배출과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집 안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개미로 사는 건 괜찮은데 굳이 현관문을 나서고 싶진 않은
내 나름의 집안일 마지노선이라 이 일은 남편 전담이다.
퇴근 후, 운동가며 가지고 나가는 쓰레기봉투들이었는데
근래 바빠진 남편이 잊어버리는 날도 잦고, 그게 쌓이니
분리배출함도 지저분해지고
끝까지 내가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영역의 선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나도 모르게 은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분리배출통 앞에서 고민에 빠져있는 내 앞으로
'휙 휙'
과자 봉지를 냅다 버리고 슝 가버리는 아들의 뒷모습이란.
"아들, 네가 이제부터 쓰레기 버려."
"어? 알겠어!"
전혀 기대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아들은 덥석 물었다.
"진짜? 엄마 분리배출함 없앨 거야. 그냥 매일 버릴 거야. 네가 할 거야?"
"알겠어요! 지금 갔다 올게요!"
뭐야, 너무 쉽잖아.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는 아들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2일째
"아들,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거 싫지 않아?"
"아니, 재밌는데."
내 안에 만족과 행복이 차오른다.
내가 정말 하기 싫은 걸 해주는 사람은 '은인'이다.
내가 널 키운 보람이 있구나.
내가 널 키우며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킨 보람을 오늘에서야 만끽하는구나.
3일째
"엄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고 반찬을 다 먹었어요."
"오~ 정말? 멋진 행동이네!"
"응, 이제 음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네."
오, 환경교육까지 되다니.
'중간에 그만둔다고 하면 안 될 텐데...'
아직은 즐겁게 한다.
습관이 되어라. 루틴이 되어라. 계속 즐거워라.
주문을 외운다.
4일째
"엄마, 근데 나 쓰레기 버리는 거 용돈 받으면 안 될까?"
"어 그래, 하루 100원 어때?"
"음식물 쓰레기랑, 분리배출 각각 100원씩, 하루 총 200원은 해야지."
"그래, 그러자"
하루 200원, 일주일 용돈에 1,400원 추가.
책임감도 생기고 경제교육도 하는 거니까. O.K!
5일째
"엄마, 근데 오늘은 쓰레기양이 많네. 좀 힘드네. 10g당 100원 합시다."
"뭐?"
"그리고 난 빠르잖아. 아빠는 한참 있다 들어왔잖아."
느낌이 안 좋다.
6일째
"아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너무 늦게 자네. 쓰레기도 안 버렸던데."
"양이 안 많던데~ 내일 버릴게요!"
"우리 약속은 매일 버리기였는데?"
"하루 안 버려도 되잖아요. 내일 할게요~~~"
그래, 지금은 너무 늦은 시간이지.
며칠 행복했음 되었지. 아직 어린애인걸.
어차피 크면 하기 싫은 일들 실컷 해야 할 텐데.
직장에서 널 만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니.
아들로 만났다 보니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구나.
VS
아니지, 이대로 마음 약해져 내가 물러서는 게 맞아?
지금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음 안 하고
계산기 두드리며 이익을 취하고 싶겠지만
나중에 세상에 나와보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생각보다 없다는 걸 알게 될 텐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책임질 게 오히려 더 많아진다는 걸 모르는 거지.
그래! 아직은 집안일이니 네 자율에 맡겨볼까 했는데 안 되겠다.
사소하고 작은 이 책임과 약속이 잘 지켜질 때
더 중요하고 무거운 약속도 지켜낼 수 있지 않겠니.
아들, 엄마는 결심했다.
집안일을 성공하는 아이로 널 키우겠다.
"아들! 안돼, 매일 버리기로 했잖아. 다녀와. 이제부턴 몇 시에 쓰레기를 버릴지 네 스스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해 봐."